이질감을 느낄 만한 타자의 출현은 새로운 스토리를 생성하기에 적절한 이벤트가 된다. 코미디언인 조던 필의 감독 데뷔작 겟 아웃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자친구 집에 방문한다는 설정은 흑인이자 외지인인 주인공이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집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하길 기대하게 만든다.이러한 경향은 영화 곡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누가 혹은 무엇이 수많은 끔찍한 일들의 원인인지 알 수 없으나 일본에서 온 외지인에게 시작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언어로써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의심은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영화에서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인물 설정은 영화의 전개 방향에 대한 ‘예상’을 관객들에게 요구한다.겟 아웃에서 이러한 ‘예상’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주목할 만 하다.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여자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는 일은 일상적인 사건이다. 누구든 사랑하는 연인의 존재를 가족에게 알리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주인공인 그와 함께 우리도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걱정을 이어간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발사는 착륙과 같다.”발사가 착륙과 같다니. 영화가 끝난 뒤에 머릿속에 남은 대사가 이 것 뿐이라는 게 한심할 정도로 집중해서 봤던 장면이다. 맷의 환영이 나타나 라이언을 깨우고 나서 남기고 간 해결책은 ‘Landing’에 사용할 에너지를 추진에 이용하는 것. 어쩌면 맷이 도움을 준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생각해내고 생각대로 실현한 것은 라이언 혼자였다. 삶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던 라이언을 끝까지 살게 한 힘이 무엇일까.그래비티를 본 게 벌써 3년 전이다. 세월이 지나서 OCN에서 다시 마주친 그래비티는 내 뒤통수를 때리는 듯하다. 우주는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가혹하고 무자비하다. 지구에 있다고 해서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두려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상처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소유욕은 우리 내면의 살갗에 타는 상처를 내지만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없다.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을 수 있다.라이언과 맷은 자기 자신과 서로를 제외한 그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다. 그들은 ‘無’의 상태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살 방법
영화관에 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평소 앉던 의자보다 조금은 푹신한 그 위에 앉아 우리는 각자의 기대를 깜깜해지는 조명 아래에 뿌린다. 기대가 충족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황으로부터 오는 감정은 온전히 관객의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일은 만원 내고 다른 이의 꿈 속에 들어가는 행위일 지도 모른다. 짧게는 90분, 길게는 140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스크린 속 세상을 현실이라고 믿는다. 그와 동시에 팝콘을 씹으며 화면 위에 나타나는 장면들이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자각한다. 그 지점에서 관객은 상당히 관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스스로의 인생조차 관조할 여유가 없던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숨쉴 틈이 확보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영화관 문을 나오는 길에 긴 꿈에서 깨어난 느낌이 들기도 하는 듯 하다. 일종의 자각몽을 꾸고 난 기분이다.고전 누아르 영화의 느낌을 풍기는 “셔터 아일랜드”는 꿈에서 깨어야만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테디는 현실과 환영 사이에 놓인 인물이다. 영화적 분위기만 보면 단순히 기괴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설정이 이곳 저곳에 널려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테디’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 또는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유명한 소설일수록 원작의 감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얼마나 신선한 스토리 구성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각색은 1차적 창작물에 대한 2차적 가공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창작의 스펙트럼이 제한될 수 있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면서도 친근한 소재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온 캐릭터들을 활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얻게 되는 대중의 관심은 연출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각색의 과정에서는 인물이나 사건, 시대적 배경까지 모두 고려하여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관객에게 어필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 경우 원작에서 눈에 띄지 않았던 배경적 요소에 관심을 기울여 색다른 전개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원작에 등장하는 부수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원작과 다른 이야기를 녹여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근대에 인기를 끌었던 소설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전적인 문학작품을 재해석한 예시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셜록 홈즈’는 대중에게 지속
직선은 명료하며 평범하다. 그러나 무한하다. 그 기점도 종점도 정해져 있지 않기에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자의적으로 설정하여 하나의 선분을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는 짧은 선분은 삶이라는 직선 전체를 포괄할 만큼의 감정적 파장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항상 화려한 배경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직선적으로 설정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제한된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열차는 직선의 운송수단이다. 그리고 여러 칸의 연결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목적을 지니고 그 안에 탑승한다. 좁은 공간에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갈등의 시작이 될 수도, 생존의 열쇠가 될 수도있다. 밀정, 부산행, 설국열차는 모두 열차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속에 탑승한 인물들 그리고 사건의 전개에 역동성을 부여하였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경성행 열차에 탑승한 이들, 누군가는 폭탄을 옮겨야만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막아야만 한다. 밀정에서 열차라는 공간은 다소 긴 러닝타임인 140분을 체감시간 90분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영화의 초반부터 중반까지 관객들은 스토리 상의 배경적인 이해와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