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은 일본 여행, 그 중에서도 온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지역이지만,일본 규슈의 대표적인 온천 관광지인 유후인도 위기를 겪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전역을 휩쓸던 산업화 시대에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는 일이었다. 이때 유후인 주민들은 함께 모여 젊은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즉 떠나지 않게 할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였다. 과연 그 대안은 무엇이었을까? '당신들의 발 밑 보석을 보라', 유후인 지역재생 당시 마을 리더 중 한 명이었던 미조구치 쿤페이가 한 말이다. 유후인이 위기를 겪고 있을 당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가 바로 자신 발 밑에 숨겨진 보석을 찾는 것, 즉 자기다움, 지역다움, 유후인다움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유후인은 온천 지역이었지만 이미 근처 벳푸가 대표적 온천 지역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즉, 유후인은 벳푸와의 차별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유후인만의 자기다움, 유후인다움은 무엇일까? 벳푸는 이미 대규모 단체 관광과 남성 중심의 온천 여행을 콘셉트로 하였는데, 이에 반해 유후인은 소규모 개별 관광과 여성 또는 가족 중심의 온천 여행을
이 아름다운 별 모양의 장소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까? 아마 일본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든 공원이나 정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다. 바로 150년 전 '하코다테 전쟁'의 본거지인 고료카쿠로, 무려 반년 넘게 전쟁이 치러진 곳이다. 고료카쿠는 다섯 개의 모서리, 즉 별 모양을 한 성곽으로, 1857년 하코다테 개항 즈음해서 방어력 강화를 위해 축조하기 시작했으나, 예산 부족으로인해 원래보다 작은 규모로 10년 만에 완공된 곳이기도 하다. 또 이곳을 이야기할 때는 고료카쿠를 본거지로 삼아 전쟁을 치른 '신센구미' 를 빼놓을 수 없다.신센구미는 1863년에 조직된 무사대로 원래 쇼군의 경호를맡았으나 나중에는 교토의 치안 유지와 막부 반대파를 공격한 조직이다.그 중 '독종부장(오니노 후쿠죠- 일본어로 전환)'이라 일컬어지는 신센구미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히지카타 도시조는 무진전쟁 당시 하코다테까지 와서 전사했다. 농민의 아들 히지카타는 사무라이로 출세했고, 무진전쟁의 막바지까지 활약했다. 그런 그가 배에 총탄을 맞고 절명한 곳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는 언제나 헌화가 끊기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얼
금년 4월 30일 일본의 헤이세이 시대가 끝난다. 헤이세이 연호의 아키히토 일왕이 2001년에 한반도와 혈연관계를 언급했던 것은 아직까지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듯 싶다.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백제와 일본의 관계에 대해 생각나는 단어는 한국사 교과서에서 언급된 쇼토쿠 태자, 아스카, 다카마쓰 고분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교과서에서만 봐오던 아스카, 그곳은 어떤 곳일까? 혜자의 제자이자 일본에 불교를 중흥시킨 인물인 쇼토쿠 태자의 유적이 주로 위치하고 있는 곳이 바로 아스카 지역이다. 아스카의 대표적인 유적인 다카마츠 고분에는 백제의 고분벽화와 유사한 양식으로 유명한 다카마츠 고분벽화가 있다. 하지만 이 고분벽화와 백제의 문화와의 관련성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인근 아스카 사의 유물 전시관에는 절 소유 불상과 백제 불상과의 유사성, 수막새의 유사성을 설명해 놓은 곳이 있었지만 관심있는 한국인조차도 찾기 힘든 구석에 위치해 있는 점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일본 여행객 천만인을 넘어선 지금 일본 여행은 우리 시대의 트랜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여행 목적은 맛집 탐방, 쇼핑 등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이
우리나라만큼이나 입시에 대한관심이 많고, 입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단연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입시철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 그리고 국가 전체가 동요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본 내에서는 매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많은 이들이 합격 부적을 사기 위해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다자이후 텐만구라는 곳인데, 일본인들은 도대체 왜 그곳에서 합격과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것일까? 바로 이곳에는 '학문의 신'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헤이안 시대의학자이며 시인, 정치가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신으로 모신다. 903년 생애를 마친 스가와라의 유해를 소달구지에 싣고 가던 중 소가 엎드려 움직이지 않게 되자, 그 자리에 유해를 매장하였다.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묘가 안치된 자리에 얼마 뒤인 919년에 다자이후텐만구가 창건되었는데, 이 덕분에 이곳은 해마다 전국에서 700만 명 정도의 참배자가 방문하고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합격 부적을 사는 것 말고도 꼭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첫번째는 소의 동상의 머리를 만지는 것이다. 이 동상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이 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