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해양 환경에 관심을 갖고 해양 환경 보전에 힘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 또한 그랬다. 해양 환경과 해양쓰레기라는 주제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크게 관심도 없었다. 플라스틱을 포함한 일회용품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일회용품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좋은 기회로 해양쓰레기를 주제로 하는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련된 내용을 알아보다보니 '무지함'에서 비롯된 나의 행동들이 해양 환경 파괴의 주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르고 있던 사실들이 정말 많았다. 필자가 그러했듯, 많은 이들이 대부분 해양 환경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해양 환경 오염과 해양쓰레기의 실태를 알리며 경각심을 일깨우고, 더 나은 바다 환경을 위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얼마만큼을 생각했든, 실제로 버려지는 해양쓰레기의 양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의 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 3월까지 3년간 정부가 연평균 약 11만 4천 톤의 해양쓰레기를 수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수산부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이제야 가을을 즐기려 하는데, 선선한 가을은 온데간데 없고벌써겨울이다. 필자는 학교 활동과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9월과 10월에 가고 싶었던 나들이를 가지 못했었는데, 시험이 끝나고 가려 하니 날씨는 0도 안팎을 맴돌고 있었다. 올해는 유독 봄과 가을이 빨리 지나가고 여름과 겨울이 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부터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매우 뚜렷한 나라라고 배워왔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사계절이 아닌, 체감상 이계절이라고 칭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이와 같이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칼럼에서는 봄과 가을이 짧아진 까닭과 겨울을 준비하는 법을 주제로 다뤄보려 한다. 사실은 놀랍게도, 가을은 짧아진 게 아니다. 다만 가을이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난 것일 뿐이다. YTN의 한 뉴스 기사에 따르면, 원래 우리나라는 대륙성 기후이기에 겨울은 6개월, 여름은 4개월 정도이고 봄과 가을은 1달 정도씩 밖에 안 됐다고 한다. 또한 교과서에서는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봄과 가을은 하나의 절기에 불과한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올해에는 여름 날씨
지나치게 뜨겁던 이번 여름도 어느새 지나가고 이제는 가을이다. 무더운 데다가 습하기까지 한 한여름 날씨를 마냥 좋아하지 않았던 필자는 날이 선선해지는 것을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또한 가을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을만의 감성이 있는 것 같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그 가을만의 감성을 느끼는, 일명 '가을 타는'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런데 이 '가을을 탄다'는 것은단순히 가을을 느낀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나는 가을에 하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을 할 때야말로'가을을 탄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칼럼에서는 가을에 하면 더욱 의미 있는 일 몇 가지를 소개하며 가을을 제대로 타보려 한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가을에 읽었던 책은 유독 기억에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 이유는들판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여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을 기다리듯이 책 속에서 지식을 거두어들여 지금의 낡은 껍질을 깨우치고 인생의 밝은 날을 준비하기 위함이기 때문¹이라고 한다.이번 가을, 평소
어릴 적부터 윤동주의 시들을 배워오며, 윤동주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윤동주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그의 몇 안 되는 작품들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과 부끄러움의 정서 등밖에 말하지 못하는 나였기에, 시인 윤동주를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영화 '동주'를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윤동주의 시가 등장했던 시대적 배경과 윤동주의 생애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록 영화이기에 연출이나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당시의 사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처참했다. 학교가 일본식으로 바뀌고, 일본식 이름을 쓰도록 강요하고, 제대로 된 우리말을 쓰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대항하는 자들을 고문하고, 실험에 이용하는 등 사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비극적이었다. 이러한 궂은 상황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하고, 일제에 대항하는시를 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끝없는 고통을 계속해서 견디고 또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윤동주가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 어느 부부에서는 안타깝기도 하다. 송몽규라는 인물은 이번에 영화를 보며처음 알게 되었다. 문학 시간에도, 한국사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상당히 중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