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준의 영화 칼럼] 부끄러움을 아는 것

영화 '동주'를 보고

 

 

어릴 적부터 윤동주의 시들을 배워오며, 윤동주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윤동주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그의 몇 안 되는 작품들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과 부끄러움의 정서 등밖에 말하지 못하는 나였기에, 시인 윤동주를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영화 '동주'를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윤동주의 시가 등장했던 시대적 배경과 윤동주의 생애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록 영화이기에 연출이나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당시의 사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처참했다. 학교가 일본식으로 바뀌고, 일본식 이름을 쓰도록 강요하고, 제대로 된 우리말을 쓰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대항하는 자들을 고문하고, 실험에 이용하는 등 사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비극적이었다. 이러한 궂은 상황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하고, 일제에 대항하는 시를 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끝없는 고통을 계속해서 견디고 또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윤동주가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 어느 부부에서는 안타깝기도 하다.

 

송몽규라는 인물은 이번에 영화를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문학 시간에도, 한국사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상당히 중요하고, 대단한 인물임은 영화를 보며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윤동주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한 명이고, 대한민국을 위해 죽기 직전까지 싸워온 독립운동가다.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안정적인 삶을 살았더라면, 분명히 출세해 성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이를 포기하고 사회를 위해 독립운동의 길을 선택한 위인이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일대기를 보고 나니, 우리나라의 독립위해 목숨 걸고 싸워온 그들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를 살고 있었다면, 나는 그들처럼 용감하게 투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윤동주가 대부분의 시에서 부끄러움의 정서를 드러냈지만, 나는 그것이 진정한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속 정지용의 말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당시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이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끌어다 고문한 뒤에 실험에 이용한 일본인들이나, 편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본의 편을 들며 같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라고 생각한다.

 

윤동주, 송몽규에 대한 경외심 말고도, 수많은 감정이 가슴 속에 남아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즈음 고문받고, 죽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민족이 빛을 보지 못하고 고통 속에 죽어가야 했던 당시의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이런 장르의 영화는 꽤나 오랜만에 본 것인데,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윤동주의 시를 몇 편 읽으며 잠이 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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