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윤리 칼럼] 기독교와 환경, 인간중심주의 사상1

기독교의 자연 환경 사상과 그에 따른 영향을 살피다.

필자는 생활과 윤리를 공부 하고 있다. 항상 의문이 들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환경윤리' 부분에 나오는 인간 중심 사상에는 항상 '기독교(그리스도교)'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할 권리를 주었다는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는 것은 같은 피조물들이 지배하고, 지배 당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게 자연을 '지배'할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지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건 '신'이 아닐까? 하는 궁금으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가장 광범위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환경’ 문제이다. 오랜 시간을 걸쳐 서서히 그 문제점이 한 둘씩 발견되어가며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도는 점차 커지고 있다. 환경 문제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점차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1 

 


환경을 보호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런데도 점점 더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에는 많은 논쟁들이 생겼다. 다음은 논쟁 중 몇 가지를 간추려 온 것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자연을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지는가?’ ‘환경 보호의 의미와 책임은 과연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하는가?’ ‘자연이 인간 행위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가?’ 등.2 이와 같은 환경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바라보는 환경 또한 달라지고 있다.     

 

지금부터는 여러 학자들의 이야기와 책을 통해 기독교 환경 사상에 대한 입장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다. <Design With Nature>라는 책에서는 기독교가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고 이야기한다. 창세기 1장에 나와 있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라’라는 구절을 말하며 서양에서 이루어진 환경 파괴가 이로 인해 생겨났다고 이야기한다.3 


이에 대표적인 학자로는 ‘아퀴나스’를 꼽을 수 있다. 또한, 교재로 사용되는 윤리 교과서들을 본다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중심주의로 분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퀴나스는 ‘신의 섭리에 따라 동물은 자연의 과정에서 인간이 사용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중심주의’에 속해 있는 기독교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같이 기독교의 환경 사상은 ‘인간중심주의’라고 잡혀있는 상태이다. 

 

서양은 ‘프로테스탄티즘’, 즉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칼뱅이 주장한 ‘직업 소명설’ ‘구원 예정설’ 등과 함께 자본주의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려고 하였다. 직업을 통해 성공을 이루면 그 사람은 신에게 구원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칼뱅의 주장으로 서양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대를 이루며 부를 점차 축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서양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발전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했으며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창세기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환경 파괴의 정당성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에 이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이단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편화 되었던 그 사상과 다르므로 이단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성 프란체스코는 모든 피조물이 창조의 동등한 일부분이며 각 부분은 신의 계획의 일부이지 인간의 공리적인 목적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기독교에서 소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던 그리스도교는 자연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인간이 신의 명령에 따라 관리할 대상이자 신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본다. 자연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자연관 대부분이 인간중심주의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로 분류되고 있다.

 

린 화이트라는 20세기 역사학자는 ‘기독교가 생태적 위기에 근면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사이언스’라는 잡지에 자신의 논문을 싣는다. 앞서 말했듯 기독교가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논문이었다. 린 화이트는 논란의 요지에 서 있는 바로 그 말씀, 창세기 1장을 보며 인간이 자연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나타내며, 이분법적 사고를 찾아낸다.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을 이용하려는 적극적 자세는 기독교 성경을 읽음으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것은 인간 중심 자연관이 되어 자연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화이트는 기독교의 인간 중심적인 교리를 환경 위기의 주범으로 보았다고 여겨졌다.

 

사실 그의 처음 처음 주장은 그를 ‘기술 결정론자’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이언스에 실은 글을 통해 기독교가 자연 지배 사상을 만들었고, 자연을 도구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기술 결정론자임을 부정하게 한다. 그가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에 게재한 글의 제목도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기원’이다. 그렇다. 바로 그 역사적 기원이 기독교의 인간중심주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센트 마이어라는 학자도 개신교 신학이 사실상 산업주의 정신을 허용했다고 보았다.

 

칼 아멜리라는 학자는 기독교의 환경 파괴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계약을 인간 중심적으로 축소했으며 이로 인해 인간 이외의 다른 피조물을 경시하는 생각과 태도를 형성하였다. 기독교는 자연의 짐승들, 물고기, 새, 푸로가 나무 등을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에서 배제하였으며 그들을 단지 인간을 위한 대상으로만 간주하여 자연 훼손과 파괴는 물론 위기를 초래하였다.”

 

지금까지 기독교 사상이 자연환경을 바라보는 시점에 대하여 다루었다. 다음 편에서는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보도록하겠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참고: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00913400003309
2.인용:  https://blog.naver.com/heart71/221694564497
3.참고: http://kostavoice.org/삶과-신앙반영운의-환경이야기/반영운-기독교는-과연-환경파괴의-주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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