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연우의 독서 칼럼] 기록의 허점을 찾아, 미디어 리터리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읽고

유튜브, 인터넷을 하며 늘상 핸드폰만 쥐고 있다보니 독서를 해본지가 언젠가 싶었다. 술술 읽힐 만한 재미있는 책을 검색해 보기로 했다. 과거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용의자 X의 헌신』을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책 중 한 권을 읽기로 하였다. 책을 죽 스크롤하던 중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인 《악의(惡意)》를 읽기로 하였다.

 

《악의(惡意)》는 제목에도 잘 드러나 있듯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범인이 왜, 어떤 의도로 범행을 저질렀는가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다.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다른 형식은 독자에게 예상치 못한 전개에서 나오는 신선함과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박진감을 선사한다. 이야기가 전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밝혀지는데, 이후 범행 동기를 추적하는 가가 형사를 따라 범인의 악의가 무엇인지 좇는 행위는 독자에게 깊은 몰입감과 추가적인 재미를 제공한다.

 

 

이 책은 주인공 노노구치와 가가 형사 둘의 시점이 장마다 교차하며 진행된다. 첫 장은 어린이 동화 작가 노노구치 오사무의 시점으로, 그는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자신의 친구 히다카 구니히코가 살해된 현장을 목격한다. 가가 형사는 노노구치의 도움을 받아 각고의 추리 끝에 범인을 체포하지만 범인은 좀처럼 범행 동기를 밝히지 않는다. 가가는 노노구치의 수기, 범인 집에 있던 기록물 등을 이용해 동기를 좁혀나간다. 파헤칠수록 커지는 스케일과 반전에 수사는 난항을 겪지만 새로운 기록과 증언을 통해 가가는 자신의 추리를 입증해나간다. 

 

소설은 일반적으로 시점이 고정되어 있다. 게다가 추리소설은 추리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다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용의자X의 헌신》도 그렇고 ㅊ 또한 범인의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부분이 흥미롭다. 다만 《악의(惡意)》는 범인과 형사의 시점이 장마다 교차한다. 1장에서 범인의 시점으로 소설을 시작하여 독자가 아직 범인이라고 밝혀지지 않은 노노구치에게 친밀감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범인 공개는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이 수기를 쓰게 된 경위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진상이 명명 백백히 밝혀질 때까지 빠짐없이 기록해보자─."1


이 소설은 기록의 허점을 제대로 꼬집고 비튼다. 처음 노노구치가 살인 사건에 대해 수기를 쓰겠다 다짐했을 때 특별한 일이 생기면 기록하고픈 작가의 사명이 발휘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글을 가가 형사에게 준 이유는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고 여겼다. 이러한 개연성 아래 필자가 범인을 잡을 단서를 세팅해 놓았다고 추측했으나 독자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 범인이 수기를 쓴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노구치가 자신이 쓴 수기 때문에 체포당했다. 수기를 치밀하게 분석한 가가 형사의 추리에 독자는 감탄한다. 그런데 이것은 노노구치의 계략이었다. 그는 자신이 체포될 상황을 감수하고 수기에 추가적인 트릭을 심어놓았다. 글쓴이가 사실을 어디까지 왜곡할 수 있고, 우리가 그것을 어디까지 알아차리거나 간과해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지가 노노구치와 가가형사의 대결의 핵심 지점이다. 필자는 이 핵심을 소설이 끝날 때까지 끌고 간다.

 

"하지만 나는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건 당신이 살인을 결심한 계기였을 뿐, 더 중요한 원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온라인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2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제공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만큼 더욱 현명해지기는 커녕 우리는 단편적이고 수동적이 돼버렸다. 노노구치의 수기 같은 기사에 무작정 동요되어 상대를 헐뜯음은 물론이고 그 가십을 퍼트리는 데 일조한다. 제대로 된 근거가 확보되기도 전에 허황된 추측으로 괜한 사람을 상처 입히기도 한다. 소설 속 가가 교이치로의 능력을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미디어 리터러시"다. 소설 내에서만 독자로서 가가 형사의 시선을 따라 노노구치의 조작을 파헤쳐선 안된다. 소설 밖에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노구치 같은 사람이 만든 미디어를 꿰뚫는 가가 교이치로의 눈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악의(惡意)》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인용:《악의(惡意)》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p48
2.인용:《악의(惡意)》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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