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영의 심리학 칼럼] 붉은 여왕을 따라가는 사람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곱은 빨리 달려야 하고.”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붉은 여왕의 가설’이란 계속해서 달리지 않으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뒤처져 후퇴하게 된다는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밴 베일런이 발표한 가설이다.1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속에서 앨리스는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숲에서 탈출하고자 온갖 힘을 다해 달리지만 앨리스가 아무리 노력해도 앨리스는 숲에서 탈출할 수가 없었다. 지친 앨리스는 붉은 여왕에게 그 이유를 묻지만, 그때 여왕은 대답한다. 붉은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며, 남들보다 더 앞서가기 위해서는 지금 앨리스가 달리는 속도의 두 배 더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붉은 여왕 가설이 멸종된 생물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생활 속에도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같은 출발선에 선 경쟁자들과 끊임없는 경쟁을 하지 않으면 결국 어느 면에서나 뒤처져 경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어진다는 우리 사회의 과열 경쟁, 즉 경쟁 만능주의와 이 붉은 여왕 가설이 같은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장 우리 청소년들의 입시 경쟁과 대학을 졸업한 뒤 따라오는 취업 경쟁,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뒤따르는 다른 사람의 삶과 내 삶의 비교까지, 우리는 누구나 붉은 여왕의 지배를 받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그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해도 그 지배를 벗어난다는 것은 사회와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경쟁 만능주의가 불러오는 암울한 결과이다. 필요 이상으로 과열된 경쟁 속에서 승자는 절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에 둘러싸여 언제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고, 패자는 여러 사람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되는 서로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분명 서로 목을 노릴 수밖에 없는, 타인을 짓밟고 올라가야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회상을 형성하고 있지만 나는 이러한 경쟁이 매우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어떤 상황에서 그 어떤 경쟁 상대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 사회가 형성한 경쟁 속에서 이겨야 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붉은 여왕 가설이 만든 이 시대의 경쟁 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가 형성한 피 튀기는 경쟁에 아득바득 뛰어들기보다는 눈을 감고 차분히 나 자신과의 경쟁을 즐길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형성한 무의미한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경쟁자들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자기 자신과 경쟁할 줄 아는 사람은 그런 쓸모없는 감정을 소비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붉은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여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은 일정한 속도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에서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머물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나 그 의미 없는 경쟁에 지친 앨리스는 숨 가쁘게 달린 끝에 결국 붉은 여왕과 함께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을 아름다운 모험을 즐기게 된다. 우리는 지금 사회가 형성한 무의미한 경쟁에 발을 묶어둔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는 않은 걸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을 갈고닦는 대신 그저 남들과 같은 평범함에 안주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는 걸까?

 

각주

1. 참고: http://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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