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하나로 수십억의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을 작품 경매시장에서 지지 않고 값을 부른다. 이후에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작품 투자(아트테크)‘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사간이 흐름에 따라 가치가 상승할 때나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검증받았을 때 미술작품에 투자한다. 사업에 투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미술이 사업으로써 여겨지고 있다는 뜻인데 우리는 예술의 상업화가 이대로 괜찮은지비판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술의 상업화는 예술작품을 상품처럼 매매하여 이윤을 얻는 것이다. 이는 앤디 워홀이 예술의 상업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사업 미술가’라 소개하고 자신의 작업장을 ‘공장’이라고 칭하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소개될 당시에는상업적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익숙한 대중들이 상업적인 예술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당연하게 고가의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거래하여 큰돈을 번 사람을 부러워한다. 물론 고가에 거래되는 작품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거나 화가의 명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교육열이 높아져왔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생길 정도이다. 하지만 미술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 외에는 대부분이 미술을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미술을 배울 시간이 어디 있냐며 반대하는 부모들도 있고 자녀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여 미술을 가까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미술은 입시와 대학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미술이 다른 모든 영역에서 관련성을 띠고 있는 만큼 미술을 다른 과목과 융합하여 학습효과를 높일 수도 있고,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거나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다. 미술로 입시를 하지 않는 학생들이 미술을 자신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입시 위주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를 형성하는 데에도 미술은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인성이나 성격 면에서 미술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이끈다. 그렇기에 미술에 대한 교육을 단지 ‘적성에 맞는 아이들이 하는 것’,’미대가 목표인 아이들이 하는 것’ 정도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예술의 나라라고 불리는 프랑스에서는 미술교육을 당연시
사람들은 항상 예술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왔고 더 시대가 나아질수록 그 관심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그리고 비평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비평하고 평가하면서 예술이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또한 예술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작품의 재료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재료가 작품에서 큰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료에 따라 같은 주제의작품이라도 사람들은 감동을 느끼기도하고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충격을 받고 이로 인해깨달음을 얻기도 한다.그런데 작품에서 재료를 무제한으로 허용해도 되는가? 그렇다면 동물도 예술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동물도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대중들의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어떤 것을 동물 학대로 분류해야 하고 어떻게 금지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동물이 재료로 필요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물들은 죽기도 하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이를 동물 학대로 보고 금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작가의 표현의 자유로 보고 하나의 예술의 범위로 포함시켜야 할지는 우
미술이란 무엇인가 품위 있게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즐기는 행위만이 미술에 속할까? 아니면 무언가 멋진 것을 만들거나 그려내는 것이 미술일까? 물론 모두 미술이지만 미술의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도 미술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스타벅스 로고 속에도 미술은 있고, 나이키 신발, 심지어 초콜릿 껍질에도 미술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 속에 미술이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쉽게 지나친다. 생활 속에서 미술을 찾아볼 때 잘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미적가치를 담은 물건이 아닌 평범한 것에서 미술을 찾는 눈이다. 왜냐하면 미술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나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넓은 세상을 보려면 그에 맞는 넓은 미적 시야를 가져야 한다. 일단 제품들의 로고만 해도 미술에 속한다. 로고는 회사의 특징과 개성을 드러내도록 제작된다. 꽤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들은 시대에 맞게 로고를 변경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고 싶어 한다. 제품뿐만 아니라 로고 또한 디자인에 속하는 것이다. 비슷해 보이는 제품이지만 명품 로고가 박혀있는 것이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는 것이 로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은같은
사람들이 문화생활에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되면서 예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높아졌다. 그러나 뉴스에서, 신문에서 예술가들이 과거에 잘못했던 일들과 발언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실망하고 그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하며 그들이 이전에 제작하거나 참여했던 작품들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진다. 작품이 매우 훌륭하고 제작 당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더라도 예술가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이 밝혀지면 관심도가 크게 줄거나 비난을 받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그 작품을 찾을 만한 경로를 차단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예술을 순수하게 예술로 보지 않아서 훌륭했던 작품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예술가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은 그들이 제작한 작품들과 별개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하나로 보는 것이 옳을까? 그것은 자신이 도덕주의의 입장인지 심미주의의 입장인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도덕주의란 도덕적 교훈이 작품 속에 담겨 있어야만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도덕주의는 아무 의미 없거나 선정적으로 보이는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형식보다는 내용에 집중한다. 반면 심미주의는 예술을 예술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예술에 도덕적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