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것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도덕적 가치를 넘어서고, 온갖 미덕이 돈으로 환산되는 그런 시대 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과 정의, 도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이것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여러 사례를 제시한다.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2달러를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그 2달러를 받기 위해 책을 읽을 테지만, 독서의 목적은 오로지 경제적 이익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 독서는 본질의 목적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최대의 효용’을 근거 삼아 도덕에 ‘거래’를 부여하는 시장 논리를 옹호하지만, 우리 삶 속엔 이러한 시장 논리가 적용되지 말아야 할 영역들이 명백히 존재한다. 물질만능주의와 지나친 시장화가 야기한 세월호참사의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운운하고, 수 십년간 일본 정부의반인륜적 범죄 행위에 대한 인정과 사죄만을바라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10억 엔 합의금'을 운운하는 이들에게 도덕과
2010년 이후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되었다. 경찰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하여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열어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최근에는 이른바 '한강 토막 살인 피의자' 장대호의 신상 공개가 결정되었고, 자신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한 이춘재의 신상 공개 여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다. 그러나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반인권적, 반헌법적 흉악범죄 피의자 신원 공개는 정당하지 않다.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원 공개는 먼저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배한다. 신원 공개는 대상이 ‘피의자’ 신분일 때 결정된다. 피의자란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의 의심을 받아 수사를 받고 있는 자, 다시 말해 정식 재판 절차를 거치기 전의 상태에 놓인 자를 말한다. 이는 곧 피의자의 범행 사실이 확정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 의사결정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찰이 자의적으로 범죄 혐의에 대해 판단해 신원 공개를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신원 공개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다고는 하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찰
작년 가을 시험을 마치고 경주에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시험 기간 중에는여행 계획을 짜기에 바빴고, 더할 나위 없는 여행 계획을 짰다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첫째 날은 모든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둘째 날, 우리는 경주에 위치한 놀이공원을 방문했다. 온전히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배려해서 선택한 곳이었다. 친구의 끈질긴 요청으로 롤러코스터를 함께 탄 나는 한 시간 가까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다음 일정까진 약 세 시간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우리는 더이상의 즐길 요소를 찾을 순 없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작은 정자와 연못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정자에 앉았다. 가을의 시원한 바람과 빼곡히 들어선 나무에서 느껴지는 냄새에,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철저한 계획은 내가 줄곧 추구해온 여행의 필수 요소였다. 이는 여행이 완벽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경주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가 계획을 버리기로 결정했을 때, 그 정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자연의 향기를 맡던 순간은 여행 중 가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세계는 냉전에 돌입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했고, 각국의 식민지들은 해방과 독립을 맞이했다. 중국의 공산화와 함께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인들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그에 따른 공산주의의 확산이 일으킨 이른바 ‘적색 공포(red scare)’가 재발한 것이었다. 냉전의 사회상은 국가와 국가 간의 대결만을 내포하지 않았다. 30여 년 간 미국 사회를 지배한 냉전 이념은 자기 자신-미국 정부와 일부 정치세력, 그리고 시민들-에게 끝없는 최면을 걸면서 학문, 양심, 사상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들을 파괴해 나갔다. 1950년대 미국에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던 마녀사냥, 다른 말로 매카시즘은 극단적 반공주의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매카시즘은 공화당 소속 상원이원 매카시로부터 비롯된다. 1950년 2월 공화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는 자신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카시의 주장은 동료 의원과 미국 내 여론의 지지와 함께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진실을 추구해야 할 언론은 매카시의 근
아베 총리의 집권 이후 일본은 줄곧 개헌을 통한 ‘정상국가화’를 외쳐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 위협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 위협론은 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때마침 작년 우리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기업에 의한 강제 징용에 대해 ‘배상’ 판결을 내렸고, 이에 대응하기라도 한 듯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정권은 무역 규제를 통한 소위‘한국 때리기’를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 7월 1일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한 데 이어,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에 반출했다며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 국가)'에서빼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것이 일본 각료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전략물자 1,100여 개 품목의 한국 수출 절차가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바뀌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알리고이메시지로 일본의 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경대응을 암시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무역 규제를 단행한 이후 언론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 사
‘중국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사람은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여인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에선 거센 비가 내려 강물은 점점 불어났고, 여인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지켰던 그는 결국 물에 빠져 죽고만다. 그는 충분히 강물을 피할 수 있었고,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도 있었다. 미생은 원칙과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더 소중한 것을 잃었다. 미생과 약속을 했던 여인은 일찍이 외출을 포기하였고, 미생은 약속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인을 기다렸다. 여인과의 약속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소중했던 것은 아니였을 터. 그 순간 미생이 지키고자 했던 신의는 아무런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 허울뿐인 것이 되었다. 미생이 강물을 피하지 않았던 것은 오직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대상도, 목적도, 동기도 없이 그저 신의를 위한 신의를 지켰을 뿐이었던 것이다. 불의와 부정의함에 눈감고 기회주의에 기대 원칙과 대의명분은 저버린 이들이 성공하는 시대에 지나친 고지식함으로 융통성 없는 태도를 보여주는 미생지신의 고사는 자칫 ‘남에게 비난받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면 변화하는 상황에는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
다시 4월, 다섯 번째 봄이다. 힘겹게 출범한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의 방해 속에 1년여 만에 해체되었고, 2017년 말 사회적참사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기 특조위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왜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왜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려 했는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진정한 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1년 전 조선일보는 <세월호 4주기, ‘정치 이용’은 할 만큼 하지 않았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기재했다. “현 정권은 세월호를 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붙들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좌파 운동가들에게 자리와 월급을 주기 위한 용도로 변질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각종 프레임을 동원해 유가족의 진상규명 요구와 이를 위한 모든 노력을 폄훼했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유족들에게 ‘순수’ 유가족을 운운하며 진짜 목적이 뭐냐고 추궁했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위를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했다. 그 중 가장 부각되었던 것은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