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의 시사 칼럼] 그들에게 '국익'의 주체는 누구인가

일본의 한국 무역규제를 다루는 언론의 시선에 대하여

아베 총리의 집권 이후 일본은 줄곧 개헌을 통한 ‘정상국가화’를 외쳐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 위협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 위협론은 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때마침 작년 우리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기업에 의한 강제 징용에 대해 ‘배상’ 판결을 내렸고, 이에 대응하기라도 한 듯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정권은 무역 규제를 통한 소위 ‘한국 때리기’를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 7월 1일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한 데 이어,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에 반출했다며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 국가)'에서 빼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것이 일본 각료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전략물자 1,100여 개 품목의 한국 수출 절차가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바뀌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알리고 이 메시지로 일본의 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경대응을 암시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무역 규제를 단행한 이후 언론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 사안을 바라봤다. 그 곳에는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촉구하는 목소리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기업들에 더 큰 피해를 안겼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한국이 자초했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나라의 주요 언론사인 oo일보는 <일본도 중국 수준의 나라인가>, <청구권과 사법농단>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철저히 일본의 시각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다뤘다. 특히 <청구권과 사법농단>이라는 사설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이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등 한국 경제의 밑천이 되었다고 주장했고, 현직 부장판사의 글을 인용하여 양승태 사법부가 일제 강제징용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며 재판거래 행위를 ‘사법농단’으로 규정한 현 정권과 검찰을 비판했다.

 

그들의 일관된 기조는 ‘국익’을 위해 한국이 일본에 유화적인, 다시 말해 굴종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었다. 사드 협상과 남북정상회담 등 중국과 북한을 대하는 정부의 외교적 입장에 대해서는 국격을 낮추고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굴욕적 외교”라며 강경한 태도를 요구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선 “대화를 해라”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들이 사안에 따라, 대상에 따라 해법을 달리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주장이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정파적 이익만을 고려한 교묘한 수법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처음부터 이들의 목적이 일본의 수출규제와 무역 분쟁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기조 전반에 대한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셈이다.

 

 

최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일본어 번역판 기사를 두고 “일본 내 혐한 감정 부추기는 매국적 제목”이라며 이례적으로 특정 언론사를 지목해 비판했다. 실제로 일본 포털의 기재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기사 중엔 ‘북미 정치쇼에는 들뜨고 일본의 보복에는 침묵하는 청와대’,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라는 제목으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가 있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 자체만으로 언론사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일본의 관점에서 수출규제 문제를 헤아려본다는 것만으로 언론사가 ‘매국 행위’를 한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다만 그들의 주장과 일본의 주장이, 그들의 의도와 일본의 의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은 100년 전 일제가 한국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할 때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그 실현에 앞장섰던 대한제국의 친일단체 ‘일진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쓸쓸함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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