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사회 칼럼]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현재 이 세계는 무슨 주의라고 불릴 수 있을까? ‘이기주의’ 또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용하는 신문이나 여러 플랫폼의 글에서는 이기주의에 대한 심각성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마땅히 도와주는 것이 정답이라고 느끼면서도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모른척 하기에 바쁜 '나'를 보면서 놀라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질책했으면서도, 필자 본인이 그렇게 똑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보며 필자가 떠올린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공동체, 그리고 화합과 조화를 배우며 자랐잖아?’

 

앞선 생각에 따라, 다음은 필자가 포털 사이트에 ‘이기주의 심각’을 검색하여 나온 기사들이다. 뉴스 헤드라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집단 이기주의가 심각한 것을 볼 수 있다. 

 

공동체와 조화는 우리가 초등학생 때 배우는 도덕 교과서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인 불교, 유교, 도가는 모두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심지어는 사람과 사람이 아니라 자연과도 조화를 추구할 것을 강조한다. (출처: EBS 수능 완성 2022 사회탐구영역 생활과 윤리) 이는 우리가 도덕이라는 과목을 배우며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이지만 사회는 이와 다르다. 심지어 지금보다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이전은 지금과 달리 더 많은 조화를 이루었다.

 

현재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편을 가를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 많아졌다. 남녀의 성별로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나이, 출신 지역, 대학교, 유행하고 있는 MBTI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편을 가르기 위해, 이 세상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들이 아니다. 누군가를 멀리하는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편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무도 없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가복음 12:31)’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에는 사회의 화합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웃’이란 누구일까? 필자는 이에 대한 답으로 ‘전 세계’라고 대답하고 싶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라고 불리고 있다. 우리는 그만큼의 기술을 누리고 있고,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있고,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기술에 대하여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자격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인정할 수 있을 때,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자격이 주어지고 이 기술을 ‘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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