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아의 사회 칼럼] 돈이 그린 우리의 초상화

장마가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안도감을 느낀다. 극도로 습한 날씨에서 벗어났는데 누군들 안 그럴까. 하지만 아직 여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운 길을 걷다 상점 옆을 지나고, 그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냉기에 흠칫하는 일상을 여전히 보내고 있다. 난 이상하게 극도의 더위와 추울 정도의 냉기가 1초 사이 교차하는 그 순간의 묘하면서도 뚜렷한 이질감에 계속 흠칫하게 된다.

 

그 이질감은 학교에서 가장 심하다. 친구들이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놓는다. 그래서 심심찮게 추위 떠는 자가 발생하지만 덥다는 친구들이 항상 우세하기 때문에 최저 온도인 18도 목표치는 관철된다. 문제는 융통성도 없이 계속 18도로 간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공기의 질이 바뀌었다면 다시 설정 온도를 높여야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인데도 말이다. 결과는 상당히 기괴하다. 복도는 푹푹 찌는 반면 교실 안은 차가워 창문에 김이 뿌옇게 끼고 이슬도 맺히는 그 모습이 마치 마트의 냉동고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커다란 냉동고 안에서 설인들이 뛰어다니는 형국이다.

 

이건 분명 사치다. 에어컨 사용의 일반적인 명분을 넘어선 이러한 행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봤을 때 이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학생들이 동전 투입구에 오백 원을 넣고 학교 에어컨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만약 비용이 발생한다면? 이들이 집에서는 어떻게 행동할지를 상상해보면 답이 나온다. 아마 전기료를 아껴야 한다는 집안의 목표를 공유해 절제하거나 엄마의 압박에 강제당할 것이다.

 

비용이 들 때와 안 들 때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같으니, 행위자가 오직 돈만 보고 움직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돈이 안들기에’ 펑펑 쓰고, ‘돈이 들기에’ 절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행위를 결정할 때 삼는 잣대가 비용(돈)뿐이면 필연적으로 어떤 통념이 생겨난다.

 

 

그것을 나는 싸이의 흠뻑 쇼 논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가뭄인데도 300톤 넘는 물을 옷 적시는 용도로 쓰는 게 맞느냐 하는 이 논쟁 자체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통념이다. 그것은 몇몇 네티즌들의 입을 빌려 표출됐는데, “자기 돈 내고 물 사서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쓰겠다는데 웬 참견이냐?”는 것이다.

 

이 자유 시장적 사고는 전기, 물, 토지, 노동, 심지어는 음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돈을 주고 구매하는 모든 대상에 적용된다. 요식업에서 흔히 보이는 일명 진상짓은 자신이 돈을 주고 서비스를 구매했기 때문에 그 서비스와 관련해서 자기 행동을 제약하는 어떤 원칙도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이로써 분명해지는바, 돈을 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행위에 강력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가 재화를 얼마나 구매하든, 그걸로 뭘 하든, 서비스나 노동을 제공한 사람에게 뭘 지껄이고 뭘 요구하든 돈을 냈다는 사실 하나면 깔끔히 정리되는 것이다.

 

재화에는 일정한 사회적 원칙과 의미와 중요성이 있다. 특히 희소하면서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그러하다. 그것들을 우리는 아껴야 하며, 사용할 때는 자신의 행위가 그 재화의 분배를 왜곡시키지는 않을지, 사회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등을 헤아려야 한다. 우리 사회는 효율적인 분배를 위해 가격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불평등이나 이윤추구 같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효율성에 구멍이 뚫렸다. 소득 수준에 따른 전력 사용의 불평등성이나 골프장이 농업용 물까지 소비하는 상황, 그 외의 현상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결국 분배의 효율성과 사회적 좋음을 위한 경제 행위자들의 사회적 고려가 필요해진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방식이 돈 중심으로 바뀌면서 개인은 사실상 사회와 분리되어갔다. 사회의 문제들과 이슈, 윤리적 가치들이 엄존하는데도 돈을 냈다는 사실이 최고의 중요성을 띠었다. 재화들을 사회적으로 좋게(나쁘지 않게) 사용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소통과 토의를 통해 기준이 되는 가치와 규범, 그 아래의 세세한 것들을 정해야 하지만, 돈을 냈다는 외침이 모든 걸 일축해 버렸다. 정부 기관이나 국회가 사회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순 없을 테지만, 최소한 시민들 사이에선 그런 말이 힘을 발휘했다.

 

우린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고려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자유를 제약하는 흐름이 생기지 않을까? 그 강력한 근거는 기후 위기이다. 여러 중요한 재화들을 배급받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결국 근본적으로 돈의 당근과 채찍만으로 움직이는 삶, 돈을 냈다는 것에서 모든 정당성을 구하는 삶을 돌이켜 봐야 한다. 돈이 그린 우리의 초상화를 수정하고 덧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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