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휘의 독서 칼럼]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털실은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을 읽고

 

우아한 거짓말을 처음 접했던 매체는 원작 소설보다 각색된 영화가 먼저였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보고 난 후 도서관에서 영화의 원작 소설이 되었던 소설 <우아한 거짓말>까지 찾아 읽어 보았다.

 

남편과 사별 후 현숙의 세 모녀가 메일같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둘째 딸 천지가 좋아하는 털실에 목을 매달고 자살하게 된다. 엄마 현숙과 언니 만지는 천지가 죽은 후 각자 하루 속 천지의 기억을 되새기고 만지는 학교에서 친구 미라와 유일하게 천지에게 말을 걸어주던 미라의 동생 유라와 함께 천지의 사인들을 찾아 나선다. 천지의 죽음 가운데 서 있던 화연 또한 세 사람에게 쫓기며 그녀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된다. 이 소설을 단순하게 본다면 학교폭력 피해자의 자살 이후 사건을 파헤치는 유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는 사건의 정황과 실마리를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던져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어쩌면 이 소설 속 피해자는 천지뿐만이 아니기도 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기도 했다. 천지는 평소 오랜 친구 화연의 그늘 밑에서 '지내야만' 했던 존재였으며 학급 친구들은 화연의 지위를 통해 천지를 대했다. 화연은 항상 천지를 아끼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부러 천지가 없는 자리를 자꾸 만들어 내고 그 자리에서는 늘 천지의 뒷소문을 꾸려 아이들에게 속닥였다. 이러한 화연의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천지를 알게 모르게 피하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그런 천지의 주변엔 당연한 듯 화연만이 남게 되었다. 모든 게 화연의 계략이었고 견딜 수 없었던 천지는 그렇게 죽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언니 만지는 화연을 찾아가 돈가스를 사주고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기도 하며 지속해서 화연과 교류를 한다. 화연 또한 만지의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었으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만지의 친구인 미라의 동생 유라도 모두가 천지를 떠날 때 천지에게 몇 번 말을 걸어주었지만 결국 천지에게 상처를 남기고 만다. 천지는 이런 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던 털실을 하나씩 선물을 하고 모두에게 선물한 다음 날 자살을 하게 되었다. 처음 털실 속 쪽지를 발견한 것은 엄마 현숙이였으며 천지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이들과 지켜준 이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적은 쪽지였다. 천지는 유라와 화연에게는 용서하는 진심을, 현숙과 만지에게는 미안함과 사랑을 전했다. 늘 조용하기만 했기에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천지의 마지막 진심은 그런 것이었다. 결국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고 본인이 떠난 후의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길 바랐던 것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바뀌지 않는 것들엔 어두운 면도 있다. 학교폭력은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털실 끊듯이 가볍게 만들어 버린다. 꽁꽁 싸인 털 뭉치 속 숨겨진 편지처럼 아무도 찾으려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털실 속 편지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처음부터 털실 속에 편지가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천지가 죽었고 여전히 죽어 가고 있다. 천지는 왜 털실 속에 쪽지를 숨겨두었을까,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가장 가까운 엄마와 언니에게조차 속을 내비치지 않았던 천지의 오랜 진심들은 털 뭉치 안 5줄 채 되지 않는 쪽지 속에 모두 담겨 있었다. 천지는 아무도 털 뭉치를 끝까지 풀어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이 털 뭉치로 목도리를 뜨거나 아니면 그냥 풀어버릴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믿음이 엄마 현숙에게, 언니 만지에게 통했고 화연과 유라에게까지 닿았던 것이지 아니었을까.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천지들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바로 내 옆자리 짝꿍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일 수도 있다. 오늘부터 나는 그런 친구의 털실을 발견한다면 끝까지 풀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탐탁지 않은 호기심과 쓸데없는 용기가 또 다른 천지를 생겨나게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