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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의 생명과학 칼럼] 아프리카 돼지열병, 인간은 안전한가.

유럽 15개국, 아프리카 29개국, 아시아 9개국, 총 53개국을 강타하며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전염병,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 오늘은 이 지독한 돼지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은 올해 봄 북한 지역에 상륙한 것을 시작으로 한반도를 장악해나가고 있는,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감염된 동물은 물론 돼지나 동물 사체, 심지어는 흡혈 곤충에 의해서도 전파될 수 있으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는 고열, 혈액성 설사 등을 겪다 10일 전후로 폐사한다.

 

아직 백신조차 존재하지 않는 이 전염병으로 인해 국제 돼지고기 시장가격과 선물가격은 물론 학교 급식과 단체행사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고 있다. 필자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식단표에는 돼지고기 장조림이라고 써져있던 것이 어느새 닭고기 장조림으로 바뀌어 있고 연례 동아리 행사가 2개나 취소되었을 정도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숨 놓아도 좋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은 사람에게는 결코 전염되지 않으니까!

...라고 동물 방역 전문기구들은 입 맞추어 이야기한다.

 

물론, 지금 당장 지레 겁먹고 전 세계에 위험 경보를 내려야 할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돼지의 세포에만 부착하여 증식할 수 있는 것이 맞고, 인간에게는 조금도 치명적이지 않다.

 

그러나 자연은 언제까지고 인간에게만 관대하지 않을 것이다.

중앙아프리카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에볼라,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메르스(MERS), 이들의 공통점을 꼽아보자.

 

 

RNA 바이러스, 수많은 사상자, 그리고 인수공통감염병. 즉,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염병이란 것이다. ASFV(아프리카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앞서 언급한 바이러스들과는 달리 DNA 바이러스이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그 변이능력만큼은 RNA 바이러스 못지않다. 그만큼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것은 덤이다.

그러면서도 박멸을 교묘히 피해가는 DNA바이러스의 능력도 지녔다. 거대한 덩치 때문에 백신의 개발도 쉽지 않다. ASFV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뒤 드물게 유행한 대형 DNA 바이러스이면서 다른 어떤 바이러스와도 다르다. 아예 새로운 종류(과)의 바이러스라는 뜻이다.

 

이런 새로운 적 앞에서 인간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큰소리치고 있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ASFV가 우리 사회에서 판치기 시작했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짐승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삶의 터전, 조상, 신체 구조, 심지어는 질병까지도 공유한다. 바이러스의 눈에 우리와 돼지의 신체 구조가 과연 얼마나 다르게 비칠까. 그들이 그 작은 장벽을 넘어 인간이라는 생물종을 정복하기 시작한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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