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승연의 시사·문화 칼럼] 여행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더하다

김영하 수필 <여행의 이유>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여행은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들이쉰 타국의 공기는 뜨거웠고 낯설었으며 또 짜릿했다. 초보 홍콩 여행객들이 으레 따라가는 동선대로 우리 가족도 무난한 3박 4일을 보냈다. ‘토이 스토리’ 구역에서 대기 시간이 가장 긴 롤러코스터를 탔고, 페리를 타고 가 사람이 구름 떼처럼 바글바글한 마카오 길거리에 서서 에그 타르트를 맛봤고, 베네치아 호텔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어지러운 금빛 카지노를 내려다보았다. 세계 3대 야경으로 손꼽힌다지만 고층 건물에서 쏘아 올리는 불빛들에 사실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늦은 밤 엄마와 함께 찾은 숙소 근처 드럭 스토어나 편의점 수박 주스가 더 선명한 인상으로 남았다. 집에 돌아오니 내게는 뮤지컬 한 편을 본 듯 눈에 아른거리는 디즈니 퍼레이드의 화려한 잔상과 값비싼 미키 마우스 시계 그리고 비첸향 육포 한 봉지가 남아 있었다.

 

고작 열한 살이던 나에게 그 여행의 이유는 단순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운 추억, 그리고 그간 배운 영어 회화 표현을 써먹어 보는 것. 홍콩 이후로도 방콕의 수상 시장과 강릉의 에디슨 박물관, 수학여행 일정 중 방문한 대만 현지 고등학교처럼 새로운 장소를 직접 경험할 기회를 여러 번 가질 수 있었고 그때마다 여행의 이유는 달라졌다. 여행이 남기는 것도 물론 달라졌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소설가 중 한 사람인 김영하 역시 수십 가지 여행의 이유를 발견했고, 최근 수필 <여행의 이유>를 출간했다. 그는 ‘소설가는 여행을 많이 다닐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에 들어맞는 사람이다. 여행이라는 주제는 무척이나 거대하고, 작가의 시선에서 보는 ‘여행’은 더욱 더 색다르다. 기대와 다른 현실에 실망하지만, 생각과는 다른 것을 얻고 문득 자신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가끔은 모든 게 새것 같은 호텔 침대에 몸을 던짐으로써 상처로 가득한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달아나는 것. 그리고도 7개의 이야기가 더 담겨있다.

 

아직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내가 넓힐 수 있는 견문의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나에게 있어 <여행의 이유>의 가치는 이 때문에 빛난다고 생각했다. 김영하라는 한 개인이 겪은 무수한 경험들은 담백한 활자로 변해 기록이 됐다. 나는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던 시절의 베이징도 캄보디아의 비포장도로도 가 보지 않았지만, 이 기록을 생생하게 펼쳐볼 수 있었다. 더욱이 인간 김영하의 생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잡다하고도 해박한 지식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현실 속 일화들인데 마치 그의 소설 세계처럼 방대하다. 우리의 삶은 소설보다도 소설 같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저 여행 이야기를 썼을 뿐이고 매끄럽게 읽히는데 김영하와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우리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수필은 높은 평가를 할 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작 중 가장 공감한 대목이라고 꼽고 싶다. 누구라도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읽기를 추천한다. 전반적인 사람들의 살림이 풍족해지고 나아지면서 여행이 트렌드로 떠오른 지금, 여행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도서: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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