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의 코로나 칼럼] 사스부터 메르스까지, 그리고 코로나19

 

이전 칼럼인 "[이수아의 코로나 칼럼] 페스트부터 에이즈까지, 그리고 코로나 19"에서는 페스트, 스페인 독감, 콜레라, 에이즈 등의 비교적 먼 과거의 전염병에 대해 다루었다. 이 글에서는 사스, 에볼라 출혈열, 메르스, 그리고 슈퍼버그인 MRSA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사스와 에볼라 출혈열, 그리고 메르스는 모두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같이 동물을 매개로 전파되는 질병이다. 사스와 에볼라 바이러스, 그리고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박쥐를 매개로, 메르스는 낙타를 매개로 전염되었다. 이렇게 동물을 매개로 전염되는 질병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본래 숲 속이나 어두운 동굴에 살아서 인간과 흔히 접촉하지 않던 박쥐가 숲이 파괴되고 서식지를 잃어버리자 인간이 사는 곳까지 와서 몸에 있던 바이러스를 전파시킨 것이다. RNA 바이러스는 변이가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쉽게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사스가 범유행했던 2003년 3월, 당시 WHO의 사무총장이었던 그로 할렘 브룬틀란은 사스라는 증후군이 전 세계의 보건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를 해 사스라는 질병의 심각성을 알린다. 사스로 인한 피해가 막대했던 중국은 학교 문을 닫았으며, 수천 명을 격리했다. 전문가들은 환자들 각각의 접촉 경로를 추적했고 이들이 감염시켰을 법한 사람들을 찾아내 그 사람들 역시 격리했다. 이때 사스가 팬데믹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빠르게 파악했고, 둘째로 중국이 환자 격리를 효과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스의 증상은 환자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기 전에 발생하였다.1

 

사스의 발생 실태는 크게 소극적 은폐 단계, 적극적 대응 단계, 그리고 사건의 종료로 나눌 수 있었다. 2002년 11월 16일에 사스에 걸린 한 사람이 5명의 다른 환자를 감염시키면서 2003년 1월 2일부터 한 병원에 사스 환자 12명이 입원하였다. 이후 2003년 2월 11일, 광동부정부는 드디어 2002년 11월 16일부터 2003년 2월 9일까지 사스 환자가 305명 발생하였다는 공식 발표를 한다. 그 후 휴교령을 내리는 등 사람들 간의 격리를 진행하며 시간이 흐른 후 사건이 종료되게 된다.2

 

중국은 사스 유행 때에 전염병과 같은 위기에 대응하는 체계가 필요함을 느끼고 2005년 12월에 '국무원 돌발사건 응급관리사무실'을 신설하였다. 중국은 과거에 분산형 위기관리체계, 즉 국가 지진국, 수리부, 임업부, 임간부 등 전문적인 기관을 설치한 후에 각자 관리를 하며 재난을 예방하고 그에 대응하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재난에 대한 대응책으로 삼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전통적인 분산형 대응방식이 더 이상 현대의 위기관리체계에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2003년부터는 종합적으로 위기관리체계를 성립하였다.3

 

메르스는 사스와 비슷한 바이러스(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질병이다. 메르스는 2015년, 석 달간 한국을 덮치면서 30%가 넘는 높은 치사율을 보였다. 예상보다 빠른 메르스의 전파 때문에 정부는 대응 도중 초기 대응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였고 보건복지부 차관이 5일 만에 장관으로 격상되기도 하였다.4

 

메르스 대응에서는 우리나라의 위기관리 체계가 국립검역소, 관계부처, 그리고 관련 단체 등이 모두 협업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체계적인 구조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이전 칼럼인 "[이수아의 코로나 칼럼] 페스트부터 에이즈까지, 그리고 코로나 19"에서도 언급했듯이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 수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정부와 언론이 우리나라 국민이 전염병에 바람직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중요하게 작용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사스가 팬데믹까지 가지 않았던 데에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빠르게 밝혀낸 것이 도움되었다는 것을 알고 전염병의 바이러스를 파악하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예방의학자와 감염병 역학조사관 등이 있으며 현재 이러한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여러 가지 전염병을 조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초기 대응의 중요성이었다. 사스가 팬데믹이 되지 않은 이유와 코로나 19가 언론에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한 이유는 모두 초기 대응에 있다. 초기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고, 오히려 막을 수 있는 상황도 막지 못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WHO가 인정한 사스 예방국이 된 이유도 바로 빠르게 경보를 발령하고 활발한 환자 격리와 조기진단을 통해 심각한 전염을 막았기 때문이다. 

 

초기 대응의 중요함을 깨달았지만, 현재 우리가 놓여있는 '코로나 19'라는 상황은 이미 발생한 지 1년 반이나 지났다. 초기라고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번 코로나 19사태를 잘 이겨내고 몇 년 후, 다른 전염병이 찾아왔을 때 빠른 대응을 한다면 분명히 팬데믹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19에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초기 대응은 어떻게 해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여러 전염병 및 팬데믹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대처해야 하는지 다음 칼럼에서 다루고자 한다. 

 

 

 

각주

1 [팬데믹 시대를 살아갈 10대, 어떻게 할까?] (코니 골드스미스) 80쪽~84쪽 참고

2 [중국과 한국의 위기대응 비교분석 -사스와 메르스를 중심으로] (김재관) 56쪽~58쪽 참고

3 [중국과 한국의 위기대응 비교분석 -사스와 메르스를 중심으로] (김재관) 43쪽, 44쪽, 51쪽 참고

4 [중국과 한국의 위기대응 비교분석 -사스와 메르스를 중심으로] (김재관) 95쪽, 96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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