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휘의 독서 칼럼]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인연이 존재한다

「쇼코의 미소」(최은영,2016)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많은 이들과 부딪히고 살을 맞대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렇게 만났던 사람 중 뇌리에 깊게 박힐 만큼 기억에 남았던 이름이나 얼굴이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사랑과 연애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단순한 우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은영 단편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서는 어쩌다 마주한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에피소드로 풀어나간다. 그중 첫 번째 단편소설인 <쇼코의 미소>는 대표작인 만큼 내게 여러 생각과 의미를 울렁이게 만들던 이야기였다. 

 

엄마와 할아버지와 함께 세 식구로 살고 있던 고등학생 소유는 일본 자매결연학교에서 교환학생을 온 학생 중 쇼코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쇼코는 어깨쯤 오는 중 단발머리에 웃는 모습이 귀여운 친구였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쇼코가 교환학생 기간 소유의 집에서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고, 소유와 엄마, 할아버지 모두 쇼코가 머무는 일주일 동안 많은 일을 겪는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쇼코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일본어인 소유의 할아버지와도 예의 바르고 정겹게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늘 깍듯이 무릎을 굽혀 앉으며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소유는 낯선 외국인 쇼코가 신기하다가도 재밌고 가끔은 수줍게 입꼬리를 올리는 쇼코의 미소에 마음이 일렁이기도 한다. 

 

이 소설 속에서 목차를 나누자면 나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목차는 교환학생을 통해 함께 보낸 쇼코와의 일주일이 될 것이고, 두 번째는 성인이 된 후 소유의 방황기,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소유와 할아버지의 임종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는 그중 두 번째인 소유의 방황기에서 왠지 모를 허탈함과 쓰라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쇼코는 언젠가 비디오를 빌려보며 소유가 영화를 참 좋아하니 나중에는 작가나 감독 같은 일을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쇼코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서서히 서로의 시간이 흘렀을 때 즈음 성인이 된 소유는 뼈대 있던 쇼코의 말대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고난들을 겪는다. 나 또한 소유와 같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삶을 꿈꾸고 있었기에 소유의 독백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생각대로 일은 풀리지 않고 해가 거듭날수록 안정적인 직장이 아닌 불안정한 영화 일을 꿈꾸는 자신을 한탄하고 끝없이 방황하는 소유의 모습을 보며 혹시 나도 이렇게 될까 어리석은 두려운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왔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중략)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 「쇼코의 미소」 中

 

어릴 적 쇼코의 말처럼 사랑하던 영화를 이제는 그저 자신의 지위를 치켜세워줄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향후 내 영화의 가치관과 보는 이들에게 영화를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을지 즉, 어떠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인 지에 대한 고민을 밤낮없이 하게 된다. 그러나 가끔은 그러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머리가 아파져 오고, 시나리오를 비롯해 글을 쓰는 것조차 귀찮은 일이며 작위적이라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심각하게 나태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위적인 감정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목에서 소유의 황폐함과 잿빛들까지도 하나하나 나에게 투영해볼 수 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내 이름 앞에 붙길 바라는 꿈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소유처럼 나 또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영향력을 가진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유와 나는 그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를 선택한 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꿈과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의 마찰이 와닿아 감독으로서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소유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날들의 이야기는 마음이 미어져 왔기에 기억에 남았다. 대학에 간 후 서울로 상경해 독립하게 된 소유의 자취방에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놀러 오셨던 날, 멀리 사는 손녀를 보기 위해 사람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작은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집으로 찾아왔던 할아버지와 소유의 대화는 무미건조했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처음으로 소유에게 네가 이렇게 혼자서 영화도 찍고 하는 건 참 멋진 것 같다고 말을 해주던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시게 되었다. 늘 무뚝뚝했던 할아버지가 소유에게 건넸던 말은 누구보다 따스했기 때문에 여운이 남았던 에피소드였다. 소유는 쇼코가 떠난 일주일 후에도, 대학 입시를 치르고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을 때도, 영화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틈틈이 그리고 자주 쇼코를 떠올리고 기억했다. 어쩌면 이젠 편지로 남은 그의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쇼코는 마치 길잡이같이, 소유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했던 말들을 떠올리게 만들고 그를 이행하게 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 「쇼코의 미소」 中

 

쇼코의 미소 속 명대사를 뽑으라면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뽑을 것이다. 쇼코와 소유는 연애 같은 우정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우정 같은 연애를 했던 것인지 소설을 읽고 난 후라면 쉽사리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적과 성별, 나이 등에 제한을 갖고서도 늘 서로를 기억했던 둘이었기에 더욱더 애틋했다. 산책 중 팔짱을 껴오는 소유의 행동에 놀라 자신은 이성애자라고 말하던 쇼코가 다시 일본에서 만났던 소유에게 기대 먼저 팔짱을 끼던 날에도 그들의 사이에는 끈끈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확실한 것은 이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인연들이 있고 그 안에 피어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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