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윤의 인권 칼럼] 돌아온 퀴어 축제와 성소수자의 인권

 

 

올해로 23회를 맞은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라는 슬로건과 함께 7월 15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되는 퍼레이드와 더불어 이번 축제에서는 주한 미군대사가 지지 연설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띠는 단어인 '퀴어'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다양한 성적 소수자를 통틀어 칭하는 말이다.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다양성의 존재를 알리는 등의 다양한 소수자 인권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1

 

이 칼럼은 서울 퀴어 문화 축제와 원숭이 두창의 확산으로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퀴어 존중 논란에 대해 말하고자 작성되었다. 원숭이 두창과 퀴어는 다소 상관이 없어 보이는 주제이지만, 얼마 전부터 새로 드러난 원숭이 두창의 주 전파자가 남성 동성애자라는 가짜뉴스가 퍼짐과 함께 가려져 있던 퀴어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급격히 모습을 드러낸 사안과 연관지어 본다면 두 가지는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3년 만에 개최되는 오프라인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여러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비판하고자 한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사람들의 인권 의식이 발달함에 따라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는 이전과 비교한다면 높은 수준으로 향상되었지만 미국 등 더욱 개방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회와 비교해 보았을 때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 존중 의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여전히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차별적인 시선을 견뎌야 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성적 지향이 드러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게이'는 일종의 모욕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차마 칼럼에 담기 어려운 모욕적인 별칭이 붙기도 한다. 퀴어 퍼레이드의 개최를 막기 위한 반대 진영의 민원으로 개최시의 민원함은 터질 듯하고 개최된 퍼레이드의 맞은편에는 거대한 반대 집회가 자리한다. 

 

퀴어 문화 축제는 꾸준히 개최되어 왔지만, 개최 과정에 있어서 늘 다양한 난항을 겪어왔다. 서울 광장 사용은 신고제를 원칙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퀴어 퍼레이드에 한정하여 허가를 받도록 한 서울시의 선택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논란을 일으켰다. 퍼레이드를 막는 반대 진영 차량으로 인해 축제가 약 1시간 정도 지체되기도 했다. 퍼레이드를 막아선 반대 진영의 인파가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것은 예삿일이며, 허락 없이 퍼레이드 참여자들을 촬영하는가 하면 이를 SNS에 업로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공간에서든 타인의 사진을 허락 없이 촬영해 게시하는 것은 큰 문제이지만, 성소수자가 다수 참여하는 퀴어 퍼레이드의 특성상 자신의 성적 지향이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강제적으로 공개되는 '아웃팅'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2 

 

우리는 이 지점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성소수자의 인권이 과거에 비해 진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평등의 선에 놓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미 우리 사회는 차별과 편견의 시선으로 그들을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이 받아야 하는 평등한 대우는 결코 타인의 배려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권리이고 이는 성적 지향이 다르다고 해서 박탈당하고 소수자가 아닌 이들에 의해 보수되는 권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소수자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존중하지만 이해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성적 지향의 자유가 있듯 타인 또한 존중과 이해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존중하지 않을 권리와 이해하지 않을 권리는 왜 혐오와 차별이 필연적으로 함께할까? 물론 필자는 이것이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현실과 일상의 모습이 그러하다. 애초에 개인의 성적 지향은 타인에게 이해를 사야 하는 범주가 아니거니와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 자체가 폭력이고 차별적인 시선이다. 만약 개인의 성적 지향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소수자임을 떠나 타인에게 해악을 행위는 끼치는 행위로서 규제되어야 마땅하나 개인의 성적 지향은 타인에게 어떠한 악영향도 주지 않는다. 일부 보수 세력들은 성소수자가 자주 노출되는 것이 불쾌감을 주며 가치관이 채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영향을 받을까 두렵노라 말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성소수자를 바라봄으로써 느끼는 불쾌감은 개인의 차별적 인식에 기반한 감정에 불과하며 성적 지향이라는 것은 개인의 선호일 뿐 어떠한 경로로 옮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와 시선은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차별과 혐오를 세습하게 한다. 

 

많은 진보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인권은 여타 소수자 인권에 비해 더욱 더 경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별과 혐오에 있어서도 거리낌이 없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차별을 견뎌내야 한다는 법은 어느 국가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 나라는 당연하게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며 그들의 성적 지향이 다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정당화한다. 이번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어떠한 잡음도 없이 끝나리라 하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잡음을 통해서라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들이 겪는 부당한 혐오와 차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참고: www.sqcf.org/
2.참고: news.kbs.co.kr/news/view.do?ncd=5511103&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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