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발전된 사회이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보다 더 발전된 사회를 살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이 너무 빠르다 보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나치고 간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의 사회도 마찬가지로 현대보다 더 훌륭했던과거의제도, 기술 등이 간과되어 현재에는 볼 수 없는 것들도 적지 않게 있다. 그 중 필자가 현대에도 복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제도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바로 '사가독서제'이다. 이 제도는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만든 제도로, 세종대왕이 세운 수많은 업적에 가려져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사가독서제는 말 그대로 독서 제도이며, 국가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관리들에게 준 독서 휴가 제도이다.1여러분들은 '독서 휴가'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독서 휴가'란 독서를 하기 위해 만든 휴가 제도이다. 필자는 이 제도를 처음 듣고 나서 독서를 하기 위해 쉬는 날을 만든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독서 휴가제도를 주더라도 책을 읽기 위해 이 휴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제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면, 역사는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잘못된 점을 되돌아보게 해 주고앞으로의 삶을 발전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가 어렵고, 실용성이 다른 학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고, 자신이 전공할 학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역사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살아가고 있다.그래서 필자는 역사의 중요성과 우리가 올바른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역사왜곡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역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그 국가의 강자에 의해, 혹은 세계의 강자에 의해 참과 거짓에 상관없이 쓰이고 있다. 가깝게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의 왜곡 사례를 볼 수 있고1, 멀리는 수많은 국가들이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2또한, 우리나라도 이러한 현실을 피해가지 못하는 사례가 있을 것이다. 역사왜곡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개개인이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잘못된 교육을 받아 잘못된 역사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바로 잡아주면 된다. 두 번째, 처음에 말했다시피 역사는 우리의 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가 4년에 한 번씩 즐겨보는 올림픽은단순한 국제 스포츠 경기가 아닌 국경의 선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평화의 상징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끝났던 도쿄올림픽에서선수촌 시설, 시상식 때 사용된 꽃다발, 욱일기 형상화 등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중 필자는 도쿄올림픽에서 나타난 역사적 논란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도쿄올림픽이 시작하기 전,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일본이 올림픽을 위해 내놓은 일본 지도에 독도가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쿄 올림픽 바로 이전에 있었던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우리나라 지도에 독도를 표시해 놓자 일본이 정치적 분쟁 지역이라고 주장하여한국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독도를 제외한 지도만을 내놓게 되었는데 정작 일본은 한국 측의 항의를 받고도 눈에 띄지 않게 독도를 표시하고 지우지 않아논란이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클라이밍 종목에서 20세기 당시 전범기로 사용되었던 욱일기를 형상화 한 구조물을 만들었고1 ,개회식 당시에도 선수들을 이용해 욱일기 모양이 되도록 서 있게 하여 모양을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돌기도 했다.2 일본의 이러한 행적을 보아 현재까지도 전범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올바른 역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력 있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 SNS 등을 비롯한 각종 매체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각종 매체들부터 모범적으로 나서서 우리의 역사를 알려야 하며, 중국의 역사 왜곡 심각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대표적인 텔레비전 매체인 드라마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고 있어논란이 되었다. 올해 3월 26일, ‘조선구마사’라는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사극 드라마가 역사 왜곡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폐지되었다. 이 드라마는 조선 초기 조선의 제 3대 왕 태종 이방원과 창녕대군(훗날 세종)이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드라마 상에서 창녕대군이 식사를대접할 때, 중국의 월병, 중국식 만두, 그리고 한자가 그려진 중국식 술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 :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88344.html).이러한 부분을 보아 조선시대 당시와의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얻고 있다. 각각의 과목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미래에 우리가 경험하게 될 사회생활을 미리 연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에도 무언가를 학습하기 위한 곳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그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지은 학교 또는 일제 총독부에서 조선인들의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만든 학교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당 선생은 신민회 당시(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학교 설립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서전서숙 등의 학교를 세웠으나 헤이그 특사 이후 재정난이 악화되면서 1년 만에 폐교되었다. 이후 1909년에 이회영 선생이 만주로 떠나고 교육진흥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우당 선생은 1911년 일본의 간섭을 피해 만주에서 신흥강습소를 세운다.1 그렇다면 우당 선생은 왜 막대한 경비를 감수하고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에 집중했을까?필자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독립투사들을 꾸준히 배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한국사 시간에 조선시대의 훈구와 사림에 대해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선의 훈구파는 계속해서 권력을 상속하며 권위를 누리고 있었고, 이와 반대로 사림파에서는 연산군 때부터 사화로 인해 많은 타격을 받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로마시대 초기에 귀족들이 보여준 모범성과 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의무는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와 책임, 즉 높은 도덕성과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1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귀족들은 자신의 부가 축적될수록 그들의 도덕성은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실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귀족을 본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부패한 권력자들과 부유한 자들이 친일활동을 통해 번 돈으로 스스로를 과시하고 다녔을 때 그 사이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회영 선생님은 오늘날의 약 600억 원의 재산을 소유할 정도로 엄청난 명문가 집안이었으며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이회영 가문에게 돈을 많이 줄 테니 일본을 도우라는 요구도 받았다. 하지만 우당 가문은 일제의 이 요구를 거절하고 그들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가의 삶을 산다. 그는 만주 삼원보에서 학교를 하나 세우는데 그 학교가 바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신흥무관학교이다. 이
여러분들은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나키즘이란 지배자가 없는 ‘무정부주의’를 말하며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아나키스트들은 권력 그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다. 아나키즘은 현대 시대에서 사람들이 좋은 인식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상이며 국가의 형태가 거의 뚜렷하기에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일 당시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인물들이 많았던 가운데, 신채호 선생, 의열단을 시작으로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아나키스트 인물은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세계적인 아나키스트들을 보면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폭력을 행사하거나 강압적이고 억압적으로 통치하는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껴 아나키즘을 추구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회영 선생님도 제국주의와 이 대열에 있는 일본을 보고 국가라는 것에 혐오감을 느껴 아나키즘을 추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당 선생님의 가장 큰 목표는 조국의 독립이었기에 이와 관련된 이유로 아나키즘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추측된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실행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