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유정의 역사 칼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우당 이회영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로마시대 초기에 귀족들이 보여준 모범성과 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의무는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와 책임, 즉 높은 도덕성과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1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귀족들은 자신의 부가 축적될수록 그들의 도덕성은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실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귀족을 본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부패한 권력자들과 부유한 자들이 친일활동을 통해 번 돈으로 스스로를 과시하고 다녔을 때 그 사이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회영 선생님은 오늘날의 약 600억 원의 재산을 소유할 정도로 엄청난 명문가 집안이었으며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이회영 가문에게 돈을 많이 줄 테니 일본을 도우라는 요구도 받았다. 하지만 우당 가문은 일제의 이 요구를 거절하고 그들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가의 삶을 산다. 그는 만주 삼원보에서 학교를 하나 세우는데 그 학교가 바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신흥무관학교이다. 이 학교에서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6형제는 조국의 독립을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들을 모아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이들에게 학비와 식비를 무료로 하였으며 이 외에도 독립을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셨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산이 줄어 궁핍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잊지 않았다.2

 

 

현재까지도 우당선생님은 ‘독립군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이며, 그의 업적들을 통해 그는 사회적 지위와 비례하여 조국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우당 선생님에 대한 칼럼을 쓴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우당 선생님은 그의 업적에 비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에 큰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서도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칼럼을 보는 사람들이 지금부터라도 이회영이라는 인물을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다. 둘째, 우당 선생님을 통해 본받을 점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우당 선생님의 많은 본받을 점 중 그의 대담함을 가장 인상 깊게 보았다. 그가 일제의 회유를 거절한 후 고민도 없이 바로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대담함을 볼 수 있었다. 우당 선생님이 살던 당시의 사회와 우리의 현재 사회는 전혀 다르지만, 시대와 상관없이 우당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배울 점을 주신 인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당 선생님에 대한 칼럼을 쓰게 되었다.

 

각주

1. 인용: https://ko.wikipedia.org/wiki/노블레스_오블리주
2. 인용: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31/2016033101863.html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