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유정의 역사 칼럼] 일제강점기 학교의 중요성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얻고 있다. 각각의 과목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미래에 우리가 경험하게 될 사회생활을 미리 연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에도 무언가를 학습하기 위한 곳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그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지은 학교 또는 일제 총독부에서 조선인들의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만든 학교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당 선생은 신민회 당시(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학교 설립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서전서숙 등의 학교를 세웠으나 헤이그 특사 이후 재정난이 악화되면서 1년 만에 폐교되었다. 이후 1909년에 이회영 선생이 만주로 떠나고 교육진흥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우당 선생은 1911년 일본의 간섭을 피해 만주에서 신흥강습소를 세운다.1

 

 

그렇다면 우당 선생은 왜 막대한 경비를 감수하고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에 집중했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독립투사들을 꾸준히 배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한국사 시간에 조선시대의 훈구와 사림에 대해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선의 훈구파는 계속해서 권력을 상속하며 권위를 누리고 있었고, 이와 반대로 사림파에서는 연산군 때부터 사화로 인해 많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벼슬에 남게 된 학파는 사림파였다. 그 이유는 바로 서원 때문이었다. 서원은 지방에서 사림들을 배출해내는 학교였는데, 이곳에서 계속해서 사림을 배출하였기 때문에 사화 당시 많은 사림들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렇듯 우당 선생도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히 독립투사들을 배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독립투사를 꾸준히 배출할 수 있었던 곳이 학교였기 때문에 학교 설립과 운영에 집중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학교를 세움으로써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위에서 말했듯 일제 총독부에서 세운 학교들의 목적은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서였다. 학교는 학생들의 정체성을 잡아주는 곳이기도 한데, 일제 학교에서는 조선인 학생들의 정체성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우당 선생 또한 학교가 학생의 생각을 어떻게 잡아주느냐에 따라 독립운동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 가지 예시를 추가적으로 들자면, 필자를 비롯한 학생들의 정신이 해이해져 있을 때, 이를 바로잡아준 곳은 학교 혹은 학원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이 예시를 통해 교육기관이 학생들을 바로잡아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당 선생도 독립투사들이 무장투쟁을 할 경우 느끼는 두려움, 혹은 독립이라는 목표가 멀다고 느끼는 독립투사들의 정신을 바로잡아줄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비록 신흥무관학교는 9년 만에 폐교되었지만, 이 학교가 없었다면 우리의 무장투쟁 역사가 크게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많이 도왔을 뿐만 아니라 여러 무장투쟁 단체를 만들고 거사를 진행하여 일본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직접적인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어도, 이들의 독립정신이 없었더라면 조선이라는 국가가 일본에 동화되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는 좋게든 나쁘게든 한 사람의 사상을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친다. 우당 선생 또한 이러한 학교의 특성을 알고 독립의지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을 확고하게 하고자 학교를 세워 독립운동가들을 육성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각주

1. 인용: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6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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