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다은의 문학 칼럼 ]동시대를 살았지만 후대의 평가는 다르다

일제강점기 시인인 서정주와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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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인 8월 15일은 우리 조국이 광복을 얻은 날이다. 친일 청산 문제를 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과 국민의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라는 입장이 대립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데, 당시에는 일제의 강점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랐을까. 오늘은 일제강점기 당시 같은 문학인이었지만 강점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가졌던 두 사람의 작품을 비교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보자. 

 

우리 민족의 아픈 기억인 일제 강점기 시기에도 많은 문학 작품이 발표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발표된 작품 중 시만을 논하자면, 크게 친일시와 저항시로 나눌 수 있다. 이육사는 대표적인 저항시를 쓴 시인이지만, 서정주는 친일시를 많이 썼다. 오늘은 이처럼 대조적인 작품 세계를 펼친 서정주와 이육사의 시 한 개씩을 대조하고, 그들의 이러한 작품 활동이 후대 그 둘의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자. 

 

1.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 송가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몇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몇만 리런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구국대원
구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몇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인용:https://ko.wikipedia.org/wiki/마쓰이_오장_송가)

 

우선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 송가’는 마쓰이 히데오라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꾼 조선 사람인데, 가미카제 특별 공격 대원으로서 활동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한 사람이다. 이 시는 그러한 마쓰이 히데오를 찬양하는 내용의 친일시이다. 시인은 그의 행위를 ‘장하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그의 이러한 행위로 우리나라가 더욱 아름다워졌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그를 우리나라의 자랑이라고까지 칭송한다. 그는 이렇게 자살 특공대의 행적을 추앙하며 아직 그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고무시키기 위해 이 시를 썼다. 

 

2. 이육사의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인용:https://namu.wiki/w/%EC%A0%88%EC%A0%95)

 

반면, 이육사는 이와 완전히 상반되는 주제의 ‘절정’을 썼다. 이육사는 이 ‘절정’을 통해 ‘매운 계절의 채찍’, ‘북방’,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등으로 표현되는 일제 강점기 당시 힘든 상황 속에서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말하는 등 광복의 의지가 엿보이는 시를 썼다. 즉, 이 시의 주제는 강철과 같은 겨울 속에서 느끼는 비극적 상황에 대한 극복 의지라고 할 수 있겠다.

 

서정주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제 강점기를 이육사는 저토록 절망스러운 상황으로 표현하는 등 두 시는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저항시와 친일시 모두 당시 시대 상황을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서정주 등 친일시를 쓴 사람은 오늘날에 이르러 그의 문학적 업적까지 폄하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학 작품은 유튜브 등 1인 미디어가 발달한 지금보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이었을 테다. 문학은 정신세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당시 지조와 절개를 가진 곧은 지식인을 제외하고 일반 대중들은 서정주의 작품과 같이 친일 작품이 쏟아져 나오면 심리적으로 일제의 강점에 대해 유해진 인식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일제도 이를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정신적 얼을 지켜나가려는 시도를 철저하게 탄압한 것이다. 

 

이런 문학의 영향력을 서정주와 이육사 모두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이 영향력을 정반대로 이용했다. 특히 언제쯤 끝이 날지 모르는 일제강점기에 그 지배를 반대하는 글을 쓰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했던 선택이 현재 그들에 대한 평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도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순간의 이익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이 선택이 미래 나의 평판이 되리라 생각하고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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