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다은의 문학 칼럼] '낙화', 안 좋은 것이 아닐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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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낙화’는 시인들에게 참 매력적인 소재였던 것 같다. 제재로써 뿐만 아니라 시의 제목으로까지 차용한 시인이 둘이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조지훈과 이형기는 모두 낙화를 제재로 낙화라는 시를 썼다. 그러나 같은 낙화를 보고 두 사람이 남긴 감정은 사뭇 다르다. 오늘은 낙화라는 주제를 다른 두 시인의 관점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우선, 조지훈은 낙화에서 느끼는 슬픔을 주제로 시를 썼다. 낙화를 생명의 소멸이라고 보고 거기에서 오는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다. 시 속에서 화자는 낙화 장면을 바라보며 아름다움, 즉 꽃이 사라지는 서글픔을 정돈된 어조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는 구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또한,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이라는 구절에서도 낙화를 슬퍼하는 화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고운 마음’이라는 것이 낙화를 슬퍼하는 순수한 화자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화자는 낙화 장면을 보며 삶의 덧없음을 느꼈다고도 볼 수 있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반면에, 이형기는 낙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낙화를 마땅히 시기가 되면 일어나야 하는 일이며 그 행위는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꽃이 지면 잎이 돋는다. 꽃은 잎이 나오기 전에 사라져야 할 존재이고 꽃의 사라짐은 잎의 창조를 의미하기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보면 다른 생명의 시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끝내는 행위인 낙화는 숭고하다고까지 느껴진다.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꽃답게 죽는’ 나의 청춘은 슬프지만, 슬퍼할 것만도 아니다. 시인은 이별은 당연히 슬프지만 그로 인해 정신적 성숙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낙화를 통해 은유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꽃이 지고 길에 떨어져 마구 짓밟힌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형기의 낙화를 읽으며 꽃이 지는 것이 꽃의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열매 맺을 가을을 향한 희생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생활도 그렇다. 상대적으로 학업적 부담이 적었던 중학교 시절과 달리, 고등학생이 되면 대부분은 학업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도 길고, 시험을 봐도 더 긴장된다. 개인 시간도 줄어든다.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그러나 고등학교 생활을 진로를 찾고, 더 나은 미래의 내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 낙화처럼,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열매 맺을 미래를 향한 희생적 시간이라고 여긴다면 더욱 가치 있는 3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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