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윤의 독서 칼럼]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故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 (작가정신)

주로 장편 소설을 읽어왔던 나는 단편 소설을 보면 기대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확실한 기승전결을 선호하는 편인데, 단편 소설에는 장편 소설만큼의 두드러지는 전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읽기 전부터 설레었다. 그 이유는 바로 故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박완서 작가님의 장편 소설 한 권을 읽어봤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기억이 있다. 아직도 책을 읽는 것과 같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흥미로움 때문에 성함만 봐도 기대가 됐던 것이다. 이 책은 故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 그분을 아끼는 29명 작가의 단편 소설이 담겨있다. 이 이야기들이 어떠한 내용으로 어떤 감동을, 깨달음을 선사할지 매우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의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주된 주제는 바로 ‘인간관계’였다. 故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중심으로 다른 소설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관계 중에서도 가족 간의, 연인 간의, 부부간의, 이웃 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 ‘성공 물려줘’가 가장 와닿았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이웃 간의 정’을 주제로 했다는 것이다. 두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시골에서 지내다가 도시로 이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골에서의 삶을 지루하게 여겼고 도시의 삶을 동경했다. 하지만 두 명 다 시골에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겨져 벗어나고자 했던 것을 아파트에 이사한 후에야 감사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나친 개인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소설 속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은 소위 정떨어진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한 번이라도 얼굴을 익힌 사람이라면 지나가다가 만날 때 묵례 한 번 하게 마련인데, 주민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가 버린다. 또 이웃이 정성스럽게 해다가 준 음식을 썩혀두었다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등 각박하다 못해 무례한 행동을 보인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이웃 간의 비밀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밀은커녕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다. 여기서 문득 든 생각은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쩌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바꾸기는 쉽다. 내가 먼저 변해서 주변을 변화시키다 보면, 세상은 어느 순간 변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시골에서는 당연하게 맡았던 이웃집의 음식 냄새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아파트의 생활을 괴로워한다. 당연하게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으로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인성을 성찰할 수 있는 문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 매일 누리는 공기부터 시작해서 햇빛, 물, 건강, 기쁨 등등 값없이 주어지는 나머지 감사까지 생략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대 사회가 얼마나 사랑이 없어졌는지, ‘정’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얼마나 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사랑을 되살리는 것은 나에게,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너’가 아닌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는 단편 소설집이다. 사랑으로 끈끈하게 이어진 한 공동체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되어보자.

 

바로 지금, 당신의 이웃집에 문을 두드려보자.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