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서의 영화 칼럼] 전대미문 재난 속 살아남은 인류는

영화 '버드박스'에 대한 해석

원인 모를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재난 상황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까? 부산행, 감기, 연가시 같은 재난 영화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다. 이 영화들을 봤을 때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이 살아남는 데 유리한지 알 수 없었다. 한 영화에선 특정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생존하는데 이 부분에서 머리를 한대 맞은 만큼 신선했기에 이 영화에 대해 소개하겠다.

 

소개할 영화는 바로 ‘버드박스’이다. 버드박스 (Bird box)는 2018년에 넷플릭스에서 개봉됐으며 넷플릭스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청한 영화 순위 2위로 약 8900만의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15세 관람가로 장르는 드라마, SF, 스릴러로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로 감독은 수잔 비에르이며 산드라 블록, 트래반트 로즈, 존 말코비치 등이 출연한다.

 

우선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정체불명의 악령을 보면 눈이 충혈되어 곧 자살을 하게 되는데 이 사태가 심각하게 퍼지는데 이 악령을 피해 생존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블로그를 통해 이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많은 블로그 글들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서 영화의 장면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중심으로 풀어나갈 것이다. 총 다섯 개의 소재를 바탕으로 해석하겠다.

첫째, 영화의 제목의 뜻. 제목은 ‘버드박스’로 활활 나는 새가 들어 있는 상자라는 뜻이다. 영화 중반부를 지나면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다. 새들은 ‘악령’을 인지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 맬러리(산드라 블록)은 생존기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계속 새들과 함께한다.

 

둘째, ‘악령’.  앞서 말한 ‘악령’은 수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모는 정체불명의 것이다. 이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게 되고 심지어 악령을 추종하는 집단도 있다. 이 집단은 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붙잡아 눈 가리개를 벗겨 그 악령을 느끼게 하며 이를 신성한 것이라 여긴다. 마치 사이비 집단을 보는 것 같았다. 극단적인 추종, 비윤리적 행위를 하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을 보면서 현실에서도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재난의 원인, 상황만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결국 사람에 의해 사람이 죽는 일도 발생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모두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야 하지만 서로 총을 겨누는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는 점을 악령을 추종하는 집단을 통해 잘 나타낸 것 같다.

 

셋째, 누군가를 도울 때의 인물 간의 갈등 장면. 이 장면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선 선과 악도 해석자가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자 외부인을 견제하는 것도 그 상황에선 합리적인 의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급 상황에서 외부를 배척하고 본인을 먼저 지키는 것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 양상으로 인물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영화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선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받아주다가 많은 희생자도 발생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과연 위기에 처한 사람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맞을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넷째, 맬러리가 자신을 두 아이의 엄마라고 말하는 장면. 맬러리(산드라 블록)는 산부인과에 갔을 때 입양 보낼 것을 생각했을 정도로 아이에 대해 애정이 없었고 생존기지로 대피할 때도 남자아이한테는 보이, 여자아이한테는 걸이라고 부르며 이름도 지어주지도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기지까지 못 갔던 가장 큰 원인은 물살이 급격히 센 어느 지점이었는데 이 지점에선 한 명이 눈을 떠 방향을 알려줘야 생존 확률이 높았고 그 눈을 뜬 사람은 악령에 사로잡혀 죽을 각오까지 해야될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다. 그 지점이 다가오자 맬러리는 아이들 중 한 명한테 지시할 생각을 하고 또 과거 시점으로 교차되면서 여자아이가 맬러리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청자들에게 맬러리가 여자아이를 눈을 뜨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지만 그녀는 모두 눈을 안 뜬 상태로 지점을 지나며 셋 다 물에 빠져 겨우 살아났다.

 

이 장면에서 맬러리가 본인의 친자식과 아닌 아이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나아가 이들에게 애정이 더욱 생기게 된 계기였다. 마지막엔 결국 본인이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하며 아이들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 그 아이의 친엄마의 이름을 각각 붙여준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인물이 위기를 겪고 아이들과 생존하면서 그들을 자기 자식으로 인정하는 과정도 이 영화에서 악령을 피해 생존지기로 무사히 도착하는 과정만큼 중요한 서사이다.

 

마지막으로, ‘편견없는 결말’.  결말이 가장 인상깊었다. 악령을 숭배하는 한 남성이 생존자들을 죽이는 장면이 굉장히 충격적이고 무서웠지만 그 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결말이었다. 많은 생존자가 있다는 생존기지는 시각장애인학교였다.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더욱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고 또 많은 재난 영화에선 비장애인들이 생존하는 모습만 보여줬지 장애인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뒤엎었다. ‘눈이 안 보이는 것’을 단점으로 생각하며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고 모든 상황에서 약자일 거라고 단정짓는 통념에서 벗어나 시각 장애인들은 악령을 볼 수 없기에 이 상황에선 ‘눈이 안 보이는 것’이 큰 장점이 되며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준다. 나는 이런 결말이 굉장히 신선했고 맘에 들었다. 클리셰에서 벗어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깨는,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 결말을 통해 생각이 많아졌었다. 여운이 남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단순히 악령을 보면 자살행위를 하는 소재에 이끌려 이 영화를 봤었는데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교차하는 기법을 통한 인물과 상황 이해, 원인모를 악령에 대한 두려움, 외부에서 눈을 뜰 수 없다는 불안함, 위급 상황을 보여줄 때의 스릴감 등 전반적인 스토리도 좋았다. 특이한 기법, 긴박함 넘치는 재난 상황, 사회적 메시지 이렇게 삼박자 모두 갖춘 ‘버드박스’를 보며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며 스스로 이 영화의 교훈에 대해 해석해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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