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채의 독서 칼럼] 뜨거운 여름 날 더욱 뜨겁게, 소년이 온다

잊어서는 안 될 5월의 그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를 읽고

 

 

평소 한강 작가님의 책에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몇 달을 장바구니에만 담아두었다가 지난봄에서야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그만큼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단순히 5.18 상황의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장별로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는 흘러간다. 당시 인물들의 증언,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그려낸 덕에 우리는 그 속으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 특히 1장에서 소년 동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당시 중학교 3학년인 학생의 시점에서 ‘너’라고 자신을 서술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책은 총 6장으로 진행된다. 첫 장은 앞서 말한 대로 중학교 3학년인 동호의 이야기인데, 함께 시위에 참여하다 총을 맞은 정대의 시신을 찾으러 왔다가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게 된다. 매일 아침 새 관 이 들어오고 죽은 사람들이 실려 오는 그곳에서 여고생 은숙과 미싱사 선주, 대학생 진수와 함께 일을 돕게 된다. 1장에서 동호의 물음에 은숙은 이렇게 대답하는데, 그날의 진실을 잘 보여 준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다음 이야기들은 동호의 친구 정대, 은숙, 이름을 모를 한 남자와 진수, 선주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희생된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1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난 뒤의 후유증,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가족을 잃은 슬픔, 그때의 충격과 트라우마 등 5월의 잔해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읽으면서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서 마구 재현되어 잔인하면서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아픔에 소름이 끼칠 때도 있었다. 동시에 책장을 넘기기 아쉬워 한 번에 읽지 못하고 1장, 2장 3장... 아껴가며 읽었던 것 같다. 평소 책을 빨리 읽는 편이어서 이 정도 두께는 한 번에 읽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막상 책을 펼치니 절대 허투루 넘길 수 없어 천천히 읽게 되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참 잔인했고, 참혹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엄청난 피가 흘러넘쳤다.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정말 사실이었다고?’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국가가 어떻게 국민들을 상대로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있는지,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시민들의 일상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동호의 죽음으로 동호의 가족들은 몇십 년이 지나서도 그 상처를 지우지 못한다. 국가는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만을 탄압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가족의 행복을 깨뜨렸고, 너무 어린 영혼들을 빼앗아 갔다. 마치 내가 소년 동호, 미싱사 선주, 진수, 은숙 등 그 시대에 잠시 살다 나온 듯한 느낌이 들어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정말 슬프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힘든 이야기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모두 사실이고, 절대 잊지 않아야 할 역사의 일부니까 말이다. 덧붙이자면, 그때 광주의 인구는 사십만이었고, 팔십만 발의 탄환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 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2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살면서 5.18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택시 운전사’나 드라마 ‘오월의 청춘’처럼 다양한 매체로도 제작되었고, 나 역시 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등 많은 자료를 접했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 는 또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래 책장에 두고 오월이 올 때마다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아니, 항상 기억해야할 책인 것 같다. 이 칼럼을 읽는 모두에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많이 알려진 소설이지만,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오월의 소년을 만나기를 바란다. 분명 당신의 마음을 울리고도 남을 것이다.

 

각주

1.(소년이 온다/한강/창비 99p)

2.(소년이 온다/한강/창비/117p)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