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영의 문학 칼럼] 바람직한 인간상

박지원을 통해 인간상 들여다보기

 

박지원의 <광문자전>과 <예덕 선생전>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 있다. 신분, 외모, 재산 등 외적인 요소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평생을 맡은 일만 성실히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른 지금, 박지원의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박지원은 신분과 체면만을 내세우는 양반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인 <양반전>과 같이 <광문자전>과 <예덕 선생전> 속 주인공들 또한 양반들의 허례허식을 고발하고 비판한다. 박지원은 두 작품을 통해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며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서 살아가는 양반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에는 <광문자전>과 <예덕 선생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태도 역시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광문자전>과 <예덕 선생전> 속 주인공들은 곤궁한 삶에도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더 나은 삶을 바라지 않고 평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을 묵묵히 수행한다. 더 나은 삶을 동경한다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니 괜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의 삶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들의 삶의 태도는 평생을 신분의 장벽에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조선시대에는 바람직할 수 있다. 신분의 벽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넘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그러한 삶의 태도가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능력주의가 만연해있다. 채용부터 승진, 보수의 양 등 대부분의 것들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갈린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 사람의 출생이 어떻든 높은 보수를 받으며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광문자전>과 <예덕 선생전> 속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야망 없이 자신의 처지에만 안주하여 살아가면 승진은 고사하고 취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사회는 적당한 야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박지원의 작품 속 주인공과 같은 삶은 본인은 물론 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광문자전>과 <예덕 선생전> 속 주인공들과 같은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면 개개인의 경제활동을 통해 돌아가는 사회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광문자전>과 <예덕 선생전>은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는 양반들을 비판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세월이 흐르며 결국에는 옛 소설로 남는다. 이렇듯 바람직한 인간상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가는데 홀로 멈추어 있을 필요는 없다.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옛 선조의 가르침도 좋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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