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조위 청문회 마지막 날...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 "내 책임이다"


4.16 세월호 참사 특조위 청문회 마지막 날인 16일(수)에도 여느때와 상관없이 청문회장에는 여전히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고 있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가 16일(수) 오전 9시부터 서울 중구 YWCA회관 4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청문회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고(故) 정동수군의 아버지 정성욱 씨, 단원고 학생 고(故) 이준우군의 아버지 이수화 씨, 민간잠수사 김관홍 씨, 정광근 씨,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우예종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팀장, 장진홍 해군작전사령부 해난구조대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참사 당시 수색 관련 피해자의 정보 접근권 및 희생자 수습·장례지원 : 피해자' 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제1세션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정성욱 씨와 이수화 씨는 "세월호 참사 초기에 진도에 처음 도착한 뒤 정부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고, 발표된 자료도 과장되었다."고 증언했다.

 

정씨는 "팽목항 도착 후 해경의 안내가 없었다."며 "해경 파출소장에게 구조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참사 당일 해경 3009함(경비정)에서 새벽까지 수색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수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고 했다.

 

이같은 답변에 김선혜 특조위 상임위원은 "중대본 발표 자료대로 17일 당시 500명 이상이 잠수를 하고 있었나?"라고 질문을 던졌고 이씨는 "팽목항에 대기하고 있는 인력을 합쳐도 500명은 절대 안됐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어 정씨는 자녀인 고(故) 정동수군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제가 들고 있는 것은 동수가 발견됐을 때 사진이다. 반드시 끝까지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며 흐느꼈다. 사진이 보여지자 방청석에서 많은 유가족들과 방청객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제2세션에는 민간 잠수사 김관홍 씨와 세월호에 최초로 접근했던 민간 잠수사 전광근 씨가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김씨는 “17일 당시 현장에 고정된 바지선이 없는 위험한 환경이라 작업하기 어려웠고, 해경에 바지선을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전씨 역시 “민간 잠수사들이 당시 해경으로부터 배의 도면 등의 자료를 전혀 전달받지 못했고 식사나 숙소, 의료 등의 지원도 전무하거나 부실했다.”며 “1일 1회로 국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심해 잠수를 1일 3회까지 했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유가족들에게 잡혀있다고 우리 보고 들어가라고 했다. 제대로 된 대우도 해주지 않으면서 이런 말까지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제3세션 증인으로 출석한 세월호 참사 당시 각각 해양수산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팀장으로 재직중이던 이주영 전 장관과 우예종 전 팀장이 해명에 나섰다.

 

이 전 장관은 "당시 구조상황 및 세력 규모가 과장되어 보고된 것은 해경과 해수부의 책임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범대본)장이었던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과장발표와 지원 부족이 모두 자신의 책임임을 인정했다.

 

또한 참사 발생 초기 당시 구조 지원이 허술했다는 위원들의 지적에 대해서는 "바지선이나 심해잠수장비 등이 현장에 도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상황이 좋아지자마자 바지선과 심해잠수장비 등을 즉각 투입하였다.”고 해명하였다.

 

한편, 이날 오전 방청석에서 청문회를 지켜보던 유가족 1명이 충격으로 쓰러져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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