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우의 문화 칼럼1]영문학 명작 산책: Turtle all the way down by John Green

-살아감에 대하여

이 책의 주인공 에이자 홈스는 강박증과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16살 소녀이다. 에이자는 박테리아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살며, 자주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 때문에 자신이 실제가 아니고 허구이며, 어떤 존재(이를테면 작가)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나가던 중 에이자의 동네에는 뇌물을 받고 도주한 백만장자 피켓의 현상수배가 붙는다. 피켓의 아들 데이비스와 에이자는 어릴 때 그렇고 그러했던 사이인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에이자의 친구 데이지는 데이비스를 이용해 피켓의 위치를 알아낸 후 돈을 받자고 에이자를 설득한다. 데이비스의 집에 달린 나이트캠의 데이터를 내려받으려는 과정에서 데이비스와 에이자는 다시 만나고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이 이야기는 에이자와 데이비스 그리고 데이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꽤 잔잔하게 흘러간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에이자의 증상이 책 말미쯤엔 호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에이자는 책의 끝까지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쩌면 독자는 그런 에이자에게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존 그린은 그를 통해 강박증과 불안증 등 정신질환이 뭔지를 아주 잘 드러낸다. 그런 것들은 하나의 계기가 있다고 갑자기 나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약만 먹으면 떨어지는 감기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의 끝에서 에이자의 강박증이 나아지거나 데이비스의 아빠가 돌아와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에이자와 데이비스가 로맨틱한 엔딩을 맺지는 않는다. 존 그린의 소설은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다. 그저 그들은 계속 살아간다. 에이자는 자신을 괴롭히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친구 데이지를 통해 자신이 주변 사람에게 너무 무관심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은 성장하게 된다. 데이비스는 아빠에게 받은 상처를 뒤로 하고 꿋꿋이 어린 동생을 돌보며 살아나간다.

 

작가는 책의 끝에서 갑자기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에이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처음 책을 읽을 때에는 갑자기 작가가 먼 미래의 일을 말하는 데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작가는 ‘살아감’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많은 어려움을 딛고 느리지만 점점 나아지면서 살아가는 에이자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살아감’에 대한 희망을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존 그린의 책은 언제나 공통된 정서를 담고 있다. 어떤 것을 그리워하는  낡은 필름 사진을 볼 때처럼 빛바랜 느낌 말이다. 그의 소설은 그래서 묘한 설렘을 남긴다. 중간중간에 툭툭 던지는 철학적인 말들도 깊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 이번 소설도 그런 존 그린의 특성을 온전하게 담아낸 좋은 책이었다.

 

문장 PICK

“We never really talked much or even looked at each other, but it didn't matter because we were looking at the same sky together, which is maybe even more intimate than eye contact anyway. I mean, anybody can look at you. It's quite rare to find someone who sees the same world you see.”

PG. 16

-누구나 너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와닿았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찾기 쉽지만 나를 이해하거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무 말 없이 누워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연인 그런 존재를 찾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The problem with happy endings is that they're either not really happy, or not really endings, you know? In real life, some things get better and some things get worse. And then eventually you die.”

PG. 59

-해피엔딩은 사실 해피 엔딩이 아니다. 아마 이 책이 구현하고자 하는 엔딩도 이 문장의 연장선인 것 같다. '삶은 계속된다'는 말도 있듯이 실제 인생은 죽지 않는 한 어느 시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Your now is not your forever.”

-너의 지금은 네가 아니라는 말. 아마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 엉망이고 지금 당장은 없어지고 싶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삶에서 희망이 된다.

PG.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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