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현의 정치 칼럼] 5.18 광주 사태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올해 5월 18일,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 4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5.18 민주화 운동은 4.19 혁명, 6월 민주 항쟁과 함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건이다. 5.18의 40주년을 기념하며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표준 국어 대사전을 보면 “사태”라는 말의 뜻은 비유적으로 사람이나 물건이 한꺼번에 많이 쏟아져 나오는 일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한 때는 광주 사태라는 말로 불렸다가 이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한 장면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1979년 10.26 사건과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이 있었던 후 1980년 3월 대학가의 개강과 함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모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이른바 대학생들의 서울역 회군으로 그 힘이 약해지게 되었으나 광주 지역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지속하였고 신군부가 이를 같은 민족으로는 할 수 없는 잔혹한 방법으로 진압하게 된다. 이를 흔히 “광주 사태”라는 이름으로 부르다 1988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라는 용어가 나오게 된다. 이후 “광주 민중 항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과 대립하다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되며 현재는 법률로 규정된 공식 명칭이 된다1.

 

사실 그 명칭이 “사태” “운동” 혹은 “항쟁” 그 무엇으로 불린다 해도 본질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사실을 바라보는 국민 일반의 시각과 평가가 반영되었음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한때는 5.18을 국가 전복을 기도하는 반정부 폭도들의 무장 폭동 심지어는 북한군 개입설까지 떠돌았지만, 지금은 많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민주화 운동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되었다. 이는 결국 정치인들이 은폐와 미화로 자신들의 행위를 포장하려 하여도 진실은 주머니 속의 송곳과도 같이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나라 역사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조선왕조실록에서 선조실록은 최초로 수정 실록이 공존한다. 선조실록은 북인의 시각 수정 실록은 서인의 시각이다.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에 대한 시각도 예전에는 폭군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요즘은 중립 외교 등 광해군의 업적도 재조명되고 있다. 고종의 황후인 민비 역시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카피로 구한말 조선의 영웅처럼 그려졌으나 지금은 자신과 민씨 일가만을 위해 저지른 부정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서도 다양한 시작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한가지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역사의 승자로만 남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 나아가서는 세계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결국은 국민만이 역사의 최후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폭도들이 일으킨 반정부 폭동이라며 광주사태라고 불렸던 사건이 5.18민주화운동이 되었듯이 언젠가 진실은 밝혀진다. 위정자들은 역사 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진실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43157&cid=47322&categoryId=4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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