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우의 영화 다시보기] 5월 18일, 그들의 광주는 불꽃이었다.

택시라는 타임머신을 통해서 그날의 광주를 돌아보며 - 영화 '택시운전사' (2017)

 

 


‘우리 독일인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했던 만행을 기억하는 만큼, 5.18도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故 위르겐 힌츠페터 (Jürgen Hinzpeter), 5.18 민주화 운동을 전 세계로 알린 독일의 기자로 영화에서 등장한다. 위의 문구는 영화의 대사가 아닌, 생전에 실제로 하신 말씀이다.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많은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가령 통쾌함이라던가, 유쾌함, 우울함, 감동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영화를 포함해 몇몇 영화는 그저 몇 가지의 감정과 사념으로는 뚜렷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 무거우면서도, 가슴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파지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영화 ‘택시 운전사’는 그런 영화이다. 그 시대를 겪은 어른도,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아이들도 무엇보다 무겁고 차가우며, 사실적이지만 인간애가 느껴지는 영화의 모습에 압도당한다.

 

이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려면, 그 시절의 역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로, 민주화를 바라는 많은 이들이 정권에 투쟁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기에 광주에서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의 기간 동안 대규모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시대상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외국인 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대한민국의 광주라고 불리는 땅으로 직접 향하게 된다. 그러던 중 외동딸을 둔, 한 택시운전사인 만섭과 우연히 만나게 되며, 서로 티격태격하며, 광주까지 동행한다. 도착한 광주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과도 같았으며, 힌츠페터는 이런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으려고 애를 쓰며, 그러던 중 많은 시민이 다치고, 죽는 모습을 보게 된다. 광주의 현실을 모르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만섭조차 그런 모습을 보고 질겁하고, 당황해한다. 결국, 많은 이들의 희생과 도움을 통해서 만섭과 힌츠페터는 광주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그들은 헤어지며, 서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지만, 결국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아쉬운 결말로 끝나게 된다. (영화에서 만섭의 모티프가 된 김사복 씨는 힌츠페터 씨가 2003년에 찾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고인이다.)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를 몰래 빠져나가던 중 검문에서 작중 ‘박성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군인이 이들의 정체를 눈치채고도 광주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장면이었다. 분명 군인이었다면, 광주를 빠져나가는 모든 차량을 잡아야 하는 것이고, 그는 트렁크에 숨겨져 있던 필름 가방, 서울 택시 번호판을 보았다. 그런데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잡을 수 있었음에도, 그들을 잡지 않았다는 것은 더 이상 광주의 사태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둘은 광주를 제 삼자의 눈으로 바라본 외부인들이다. 특히 만섭은 애초에 보수만을 생각하며, 힌츠페터와 광주까지 동행했다. 영화 초반에도 대학생들의 데모 소식을 듣고서는 혼잣말로 그들을 나무라는데, 이런 영화 초반 만섭의 모습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광주 시민들의 관점으로 다루어졌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된다. 그는 광주에서 진상을 마주하자, 그는 힌츠페터와 시민들을 진심으로 돕게 된다. 힌츠페터와의 거리감도 영화 중후반부로 갈수록 사라져 가는데, 그러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 광주를 떠나며, 서울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석양이 지는 하늘 아래를 달리는 택시를 통해서, 두 인물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러 가는 것을 상징하고, 관객이 바라볼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많은 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모습을 볼 때 택시는 영화에서 그린 민주주의이며, 광주 그 자체이자, 동시에 관객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소재이다.

 

한편 영화를 촬영하면서 매우 특이한 촬영기법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 은근히 초점이 흐리지만, 색채감이 독특하고, 과거 한순간을 풍미하는 듯한 장면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촬영, 편집 기법은 세밀한 묘사가 아님에도 세밀하며,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보내는 메시지가 된다.

 

다만 아쉬운 장면 존재했는데, 영화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이 만섭과 힌츠페터의 탈출을 돕기 위해서 군인들과 벌인 추격전이 바로 그것이다. 장훈 감독은 광주 시민들의 도움을 나타내보고자 위와 같은 장면을 넣었다고 한 바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미 주인공들이 그 전에 이별하여 감정선이 절정에 이르렀음에도, 한 번 더 이별함으로써 애매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내용상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이 군인들과 추격전을 직접적으로 벌이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는 사실과 다른 요소를 집어넣어 극적 효과를 노릴 수 있기에 위 장면에 대해 관객마다 느끼는 정도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딸과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 투쟁의 현장에서 한 이방인은 비극의 끝을 함께했으며, 희망의 시작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관객을 비롯한 현재의 시민들은 그 시절, 광주의 모든 것에 빚을 지고 지금을 살아나간다. 차가우면서도, 무엇보다도 따뜻한 그 무언가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화 ‘택시운전사’를 정의할 수 있는 모든 것이며,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영화에 표현된 모든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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