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우의 영화 칼럼] 이름을 가진 여자로 살아가기

 

 

페미니즘과 남여 갈등이 첨예해지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치열하고 원론적인 싸움에 대한 영화를 찾던 필자는 1982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알게 되었다. 제목은 'TOOSIE'. 2003년생인 필자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영화이지만 그 무게와 주제는 현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뉴욕의 배우 마이클 돌시(Dorsey)는 깐깐한 성격 때문에 20년 동안 무명 배우로 살고 있다. 누구보다 뛰어난 배우이자 연기 선생인 마이클은 네 성격 때문에 어떤 감독도 너를 캐스팅하지 않을 것이라는 에이전시의 말을 듣고 묘책을 생각해 낸다. 그 묘책은 바로 여장.

 

'도로시 마이클스'로 오디션을 본 마이클은 <남부 병원 전선>이라는 연속극의 여성 병원 관리인 에밀리 역할을 따낸다. 마이클은 주체적이고 선구적인 여성 캐릭터로 큰 인기를 얻게 되고 그런 중에 동료 여배우 줄리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마이클은 줄리에게 키스하려다 레즈비언으로 오해받고, 줄리의 아빠에게 청혼을 받거나 동료 남자 배우에게 고백을 받는 등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점점 꼬여만 가는 상황을 감당할 수도, 줄리에 대한 마음을 숨길 수도 없었던 마이클은 드라마 생방송 중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내용만 읽어보면 막장드라마같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Tootsie>는 할리우드의 코미디 역사를 다시 쓴 시드니 폴락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명작이라고 꼽힌다. 실제로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메시지나 그를 전달하는 방식 또한 최근 나오는 여성영화보다 능숙하다.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더스틴 호프만(마이클 돌시 역)은 영화 제작을 위해 여장을 해보고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씌우는 잣대에 남성인 자신도 익숙해져 살면서 마주할 수 있는 많은 멋진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놓쳤다"라고 말했다. (인용: https://youtu.be/xPAat-T1uhE) 

 

마이클의 페르소나 도로시는 다른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고 주변의 여성들 모두 자신 그대로 당당한 도로시를 존경한다. 도로시가 당당하게 틀에 구애받지 않았던 이유가 그가 남자이기 때문이라는 점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구축한 성 이미지와 위계질서에 상대적으로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마이클이 자신을 tootsie(여성을 속되게 이르는 말)라고 부르는 감독을 향해 "톰은 톰이고 조는 언제나 조이듯이 나도 투시나 자기, 달링이 아닌 '도로시'라는 이름이 있다. D-O-R-O-T-H-Y, 도로시다."라고 쏘아붙이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는 어렵다.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성별이 붙은 호칭으로 불리며(우리나라에도 몇 년 전 '미스 ~'라는 호칭이 큰 문제가 되었다. 또한, 영어권 국가들에서는 공적인 자리에서도 여성을 sweetheart, lovely, darling 등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친절해야 한다, 웃어야 한다, 밝고 유쾌하면서도 순수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에 갇혀있다. 사회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여성은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다. 이의 단적인 예가 바로 여성의 목소리이다.

 

<퀴어는 우리의 곁에서 일하고 있다>라는 책을 보면, 회사에서 같은 말투와 톤으로 전화를 받아도 여성들은 차갑고 무례하다는 지적을 받기가 쉽다고 한다. 중저음을 가진 여성은 일상에서도 무례하다는 평을 듣기가 더 쉽다. 그렇기에  많은 여성들은 사회가 바라는 젊은 여성의 톤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한 키 정도 높게 내는 데에 익숙해진다. 마이클이 도로시를 연기할 때 항상 미소를 띤 표정을 짓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성 이미지는 비단 여성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맨 박스>라는 책에서는 사회에 팽배한 마초이즘이 어떻게 남성을 '남성화' 시키는지 말한다. 암묵적인 위계질서의 상위를 차지하는 것이 남성이기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여성을 억압하는 마초이즘이 남성들에게 또한 굴레가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민이 든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성 이미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는 비단 여성운동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자기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라. 우리가 '~해야 한다'는 틀 밖으로 발을 딛는 순간 우리는 남성도 여성도 그 이외도 아닌 우리 자신만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명대사:

 

[Dorothy Michaels: Ron? I have a name. it's Dorothy. It's not Tootsie or Toots or Sweetie or Honey or Doll. No, just Dorothy. Alan's always Alan, Tom's always Tom and John's always John. I have a name too. It's Dorothy, capital D-O-R-O-T-H-Y.”]

론? 나도 이름이 있어요. 투씨(아가씨)라던가 자기, 당신, 아가씨, 예쁜이가 아니고요. 도로시라고요. 알란이 알란이고 톰이 톰이고 존이 존인 것처럼 말이에요. 나 역시 이름이 있다고요. 도로시요. D-O-R-O-T-H-Y.

 

[Dorothy Michaels: I know what y'all really want is some gross, caricature of a woman to prove some idiotic point that power makes a woman masculine, or masculine women are ugly]

당신들 모두가 원하는 건 권력이 여성을 남성적으로 만들고, 남성적인 여성은 못생겼다는 걸 증명할 역겨운 여성상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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