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이의 독서 칼럼] 친구에게

하나의 선행이 또 다른 선행을 부르다

 

 

아마도 작년이었을 것이다. 몇 명의 친구들과 몇 안 되는 기회로 함께 찾아가는 서점 방문 때 찾은 책이었다. 사실 책의 제목, 표지와 띠지에 적힌 문구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책이 네이버에서 연재했던 웹툰을 옮겨 놓은 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읽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책이었다. '연의 편지' , 책의 제목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자 중학생 '이소리'이다. 이소리는 학급 내에서 벌어진 학교폭력의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의 올바른 행동의 결과는 그녀를 향한 폭력의 화살표로 되돌아온다. 결국 학교폭력을 당하던 친구를 도와준 뒤에 그녀는 예전에 살던 마을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서도 폭력의 후유증이 나타난다. 모든 아이가 자신을 비웃고, 깔보고, 욕을 하는 상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문득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눈물만 날 것 같은 때, 그녀가 앉기로 한 책상 아래 어느 편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조심히 편지를 열어 본 이소리는 편지를 쓴 사람이 자신처럼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와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학교를 안내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편지는 한 장이 전부가 아니었다. 편지의 끝부분에는 또 다른 편지의 위치를 알려주는 일종의 좌표가 있었다. 이소리는 나머지 편지도 모두 찾아내기로 한다. 편지를 써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옆에서 지내다 보면 가까운 존재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자주 있다. 웃고, 장난치다가도 툭하면 별거 아닌 일로 싸우기 일쑤다. 함께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때로는 유한한 자원을 쟁탈하기 위해 경쟁자가 되는 친구들. 아침에 등교할 때 길가에서 만난 친구에게 먼저 인사해줄 수 있다. 바닥에 흘린 물건을 줍는 친구를 도울 수 있고, 운동화 끈이 풀린 친구에게 귀띔해줄 수 있다. 시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고 수행평가는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사소하지만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다. 특히, 곤경에 처한 친구를 도울 수 있다. '곤경'이라는 표현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만, 책 속의 이소리가 했던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곤경에 처한 친구를 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그저 바라만 볼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그 친구를 위해 직접 나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 그 부조리한 상황에 맞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 중 이소리는 한 고민에 빠진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여 행한 일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옳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면서, 이소리는 독백한다. 학교폭력의 희생양이 된 친구를 구하기 위해 나섰지만, 그로 인해 자신을 향한 또 다른 폭력을 피해 달아났던 일, 화를 내지 않으려는 친구 대신에 비열한 상대에게 대신 화를 퍼부었던 일로 찾으려 했던 편지를 잃게 된 일. 올바르다고 생각한 일들이 정말로 '올바른 일'이었을까?

 

평소에 자신이 남을 도울 때를 생각해 보자. 남을 도울 때 무엇인가를 바라고 돕는 것보다, 몸이 앞서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가? 철학자 칸트는 윤리적 행동을 할 때의 동기에 주목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한 올바른 행동은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그 사람을 꼭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올바른 행동은, 도덕적인 행동이 된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받게 될지도 모를 부당함을 감수하는 사람을 누가 함부로 비난할 것인가. 비록 그 결과가 또 다른 피해를 낳을지라도, 그 행동은 매우 가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용기 있게 나섰을 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회의를 느끼면 안 된다.

 

이소리는 며칠 뒤 자신에게 온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전학하기 전 학교에서 자신이 도왔던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보낸 것이다. 그녀는 이소리에게 말한다. 자신을 도와줄 때의 그 용기 덕분에, 새로 옮긴 학교에서 자신이 또 다른 폭력을 당하는 학생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한다. 하나의 선행이 또 다른 선행으로 이어지는, 따스함은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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