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민의 시사 칼럼] 까대기, 배달, 파손배상까지.. 모두 택배노동자의 몫?

연이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이 필요하다

'까대기'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다. 책 속에서 주인공은 돈을 벌기 위해서 택배 분류나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 과정은 굉장히 고되고 혹독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택배 분류 작업을 흔히 '까대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했던 택배 알바가 아닌, 정식 택배 기사들은 이 '까대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할당된 배달도 당일 마쳐야 한다. 이러한 현 실정은 택배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올해만 13명이 과로사로 사망했고, 불과 며칠 전에도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경각심을 느낀 택배사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의 주된 원인과 택배 업계의 구조적 문제점, 그리고 좀 더 효과적인 대응책은 없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강도는 어떤지 자세히 알아보자. 이들은 보통 해가 채 뜨기도 전인, 6시 이전에 기상하여 지역 물류센터로 출근한다. 이곳에서 대형 화물차에 있는 엄청난 양의 택배 물량을 자신의 배송 구역에 따라 분류하는데, 이 까대기를 하는 과정에서 체력 소모가 매우 크다고 한다. 하루에 무려 7~9시간 동안 수 백 개의 택배들을 내리고 싣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까대기가 끝나고 나서야 택배 노동자들의 주 업무인 택배 배송을 시작한다. 오후가 넘어서 시작된 배송은 약 400개 정도의 하루 물량을 채워야만 끝날 수 있다. 시간이 아니라 건당 주어지는 월급 때문에 서둘러 배송을 하다 보면 파손 물품이나 분실 물품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모두 택배 노동자가 배상해야 한다. 과로사로 사망한 한 택배 노동자는 '천 원 벌고 30만 원 배상해야 한다' 며 유서에서 말하기도 했다. 또 배송 과정에서 사고가 나거나 부상을 당해도 택배 노동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배송을 모두 끝내면 12시에 가까운 밤늦은 시간이 된다. 새벽 기상을 해야 하므로 결국 이들은 하루 4~5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다시 일터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1

 

올해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혹독한 업무보다 더 센 강도의 업무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올 한해 택배 물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택배사는 큰 이익을 보았지만, 동일한 인원으로 더 많은 물량을 배달해야 하는 택배 노동자들은 더욱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더불어 추석 연휴까지 겹치면서 이들의 고통은 증대했다. 기업은 웃고 노동자는 죽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바로 택배 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택배 노동자는 일명 '특수고용직'이다. 고용주 밑에서 근로자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하는 형태의 노동을 두고 특수 고용직이라 한다.2 택배 노동자들은 월급이 아닌 배송 건당으로 돈을 받기 때문에 자율적인 특수 고용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적으로 사업주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개인 사업자로 취급되면서 노동자라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주 52시간제' 적용의 대상에서 벗어났다. 결국 이들은 '주 71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배달 건당 돈을 받기 때문에 배달이 아닌, 분류작업 '까대기'는 하루 7시간 이상 해도 돈을 받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다. 근로자로서의 보험 적용이 불가능해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러한 택배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사회적 위치는 결국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열악한 근로환경을 양산했다.3

 

이제 정말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무책임하고 위험한 근로 환경 속에서 더 이상 과로사로 사망하는 택배 노동자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먼저, 추가 인력 투입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된다. 특히, 택배 분류 작업(까대기)의 경우,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 장시간 노동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자동분류장치를 통해 택배를 분류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명 '택배법'이라 부르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도 이목을 끌고 있다. 이는 택배 노동자에 대해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산재보험 적용을 의무화해 사업자에게 노동자에 대한 근로 감독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근로자와 유사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여 밤샘 업무에 대한 보상을 의무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지금껏 휴가/병가를 내지 못하고 노동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었던 택배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보장해 과로사를 줄이는 것이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택배사들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은폐하는 무책임한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이러한 안타까운 사태에 대해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까지 이르는 주된 원인은 택배 노동자들이 법의 안전망 밖에 있다는 이유로 근로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권리마저 제공하지 않고 책임은 전가하는 이들에게 있다.4,5

 

새벽 배송, 총알 배송 기계가 아닌 인간이 노동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택배사도 택배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크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은 어땠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택배에 대한 수요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고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 현시점에서, 이제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조적 해결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참고: https://www.news1.kr/articles/?4097499
2.인용: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31771&cid=43667&categoryId=43667
3.참고: https://www.yonhapnewstv.co.kr/news/MYH20201024006900038?did=1825m
4.참고: http://naver.me/5NF8r2Nm

5.참고: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7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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