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독서 칼럼]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명작 뒤집기

세계 명작이라 불리는 <제인 에어>를 다들 한 번씩은 읽어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고아이지만 강단과 소신을 갖춘 지혜로운 제인 에어가 손필드 저택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저택 주인 로체스터 씨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로체스터에게 미쳐 버린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둘의 사랑이 좌절되고, 손필드 저택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제인은 불구가 되어 버린 로체스터 씨와 마침내 사랑을 이룬다. 나 역시 <제인 에어>를 좋아해서 족히 세 번은 읽었지만, 책 속 로체스터의 '미쳐 버린 아내'에게 관심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내에게 광기가 있는 줄 모르고 속아 결혼했다가 결국 미쳐 버린 아내를 가둬 둘 수밖에 없었다던 로체스터의 사연이 나오는 대목에서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여기, 로체스터의 말을 의심하고 뒤집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사람도 있다. 이 칼럼을 통해, 명작을 배짱 좋게 뒤집은 진 리스의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나오는 것보다 이전 시점에서 진행되는, 일종의 스핀오프이자 프리퀄이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버사의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작가는 책에서 자세한 인적 사항이 언급되지 않은 버사를 식민주의 사회에서 태어난 크리올 태생의 여성으로 설정하고, 그녀가 자신에게 매혹된 영국인 로체스터와 결혼한 후 광기로 치닫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로체스터를 제국주의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로체스터는 버사가 크리올 태생이라는 이유로 끝없이 의심하고 억압한다. 그녀를 모함하는 소문이 돌자 두려움과 증오에 눈이 멀어 그녀의 재산을 빼앗고 막다른 곳으로 몰아간다.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였던 <제인 에어>에 구체적인 시공간적 배경을 부여해서, 로체스터를 통해 나타나는 백인 제국주의의 잔혹성, 그리고 아내를 '인형'으로 만들려 하는 당시 남성중심적 사회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는 것 같다. 

 

읽으면서 어느새 평생 이해할 일 없을 것 같았던 인물을 나도 모르게 이해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제인 에어>를 읽었을 때엔 버사를 그저 '미친 여자'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대로만 보고 있던 내 시야가 편중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꾸 책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설정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채로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급급한 것 같다. 반면 작가는 작품의 설정들을 창의적으로 뒤집어서, 제인의 사랑을 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도구로만 쓰였던 '버사'라는 인물의 삶을 새롭게 풀어냈다. 나도 작가의 그런 창의성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읽는다고 해서 책에서 보여주는 대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단순히 '버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명작을 이렇게 뒤집을 수도 있구나'라는 신선한 깨달음을 주기에, 한 번은 꼭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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