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늘의 영화 칼럼] 우리가 실현해야 할 정의

제대로 된 정의를 보여주마!

나는 현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른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다. 나는 요즘 신문을 보다 보면 늘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런 세상이 과연 정의로운 사회일까?’라는 것이다. 2008년에 일어난 조두순 사건, 2021년에 일어난 김태현의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 등의 가해자들을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의는 이런 사람들을 벌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런 세상의 정의를 무시한 채 제대로 된 정의를 말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저스트 머시>이다.

 

<저스트 머시>는 2019년에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이 세상의 정의라는 이름을 가진 불의를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영화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월터 맥밀런이 인권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스를 만나서 다시 재판을 받고 결국은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브라이언 스티븐스가 마지막 심리 재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가난의 반대는 정의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중략) 법 앞에 평등한 정의를 구현하고 재산 인종 또는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한다고 말하려면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진실을 무시하고 쉬운 방법을 찾아 허위로 기소하면 됩니다.”1

 

이 영화에서는 그 사건과 관련이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서 교도소에 가두었다. 그 사람을 교도소에 가두기 위해서 거짓 증언을 만들고 그 거짓 증언이 마치 합당한 것처럼 꾸며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현대에 말하는 정의이다. 내가 이루어야 하는 일의 과정이 정의롭지 못해도 이루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현대에 말하는 정의이다. 하지만 인권변호사인 브라이언 스티븐스는 사회가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다 기각시켜도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고 행동했다. 이것이 우리가 실현해야 할 정의이다.

 

 

악한 사람은 그에 마땅한 벌을 받는 것, 선한 사람은 상을 받는 것이 정의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이렇지 않다, 선한 사람이 한 행동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순이 되더라도 잘못되었다고 그 선한 사람을 깎아내린다. 하지만 우리는 선한 사람들이 한 행동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인정하는 것이 정의이다.

 

우리가 실현해야 할 정의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 정의이다. 이런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졌을 때 우리는 우리나라를 넘어서 전 세계를 정의로운 세계로 만들 수 있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인용: https://blog.naver.com/hkddon/22201415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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