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써 나라를 수호하신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시

이육사의 생애와 그의 시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으로 190444일 경복 안동에서 태어났다영천에 있는 백학서원에서 학문을 연수했으나, 끊임없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여 1923년에 일본 동경에 있는 대학에 1년간 다니다가 이후 1925년에 귀국하였다.


중국에서 국내로 들어와 일제 주요기관 등을 파괴하다가 대구형무소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윤세주의 의열투쟁에 이육사는 큰 감명을 받고 형 이원기, 동생 이원유와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활발한 의열투쟁을 전개하던 중 19271018일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일어나자 이육사는 형, 동생과 함께 일경에게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 송치되었다. 이때, 미결수 번호가 264번이었기 때문에 수감번호를 따서 호를 육사라 지었다.

 

이육사는 형, 동생과 함께 온갖 고문을 당하였으나 장진홍 의사가 붙잡히자 2년 4개월여간의 옥고를 끝으로 석방되었다. 1932년 6월 초 북경으로 가 루쉰을 만나 동양의 정세를 논하였으며, 후일 루쉰이 사망하자 <조선일보>에 추도문을 게재하고 그의 작품 [고향]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다. 이육사는 북경에서 본격적으로 무장 항일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1932년 10월 22일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간부훈련반인 조선군관학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이육사는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건강이 매우 악화하여 앞으로 진로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육사는 시와 글을 통해 민족의식을 깨우치고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북돋는다는 새로운 항일의 길에 나서기로 하였다.

 

이육사는 정치, 사회 분야에 걸쳐 폭넓은 작품생활을 하여 1935년 개벽지>에 [위기에 임한 중국 정국의 전망], [중국청방비사(中國靑幇秘史)] 등을 발표하였다. 다음 해인 1936년에는 처음으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라는 시를 발표, 시인으로서 출발하여 ‘해조사’, ‘노정기’ 등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1938년에는 ‘강 건너 간 노래’, ‘소공원’ 등의 시작품과 [조선 문화는 세계문화의 일륜(一輪)], [계절의 5월], [초상화] 등 평론과 수필을 <비판> 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 발표하였다. 이어 1939년에는 ‘절정’, ‘남한산성’, ‘청포도’ 등의 시작과 [영화에 대한 문화적 촉망], [시나리오 문학의 특징]과 같은 영화 예술부문의 평론을 <인문평론>, <문장> 등지에 게재하였고 이어 1940년에는 ‘일식’, ‘청난몽’ 등을 <인문평론>, <문장>, <냉광> 등 잡지에 발표하였다. 1941년에 들어서자 일제의 조선어말살정책으로 민족혼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이육사의 건강은 아주 극도로 악화하였으나 문필생활은 의연히 계속되어 ‘파초’, ‘독백’, ‘자야곡’ 등의 시를 지었다. 한편 이육사는 중국인 호적(胡適)이 쓴 [중국 문학의 50년사]를 초역하기도 하였으나, 글을 발표하던 <문장>, <인문평론>지 마저 일제에 의해 폐간되고 말았다.


1942년에 사실상 유고인 ‘광야’를 발표하는 등시를 비롯하여 수필, 평론, 번역 등 매우 광범위한 문필활동을 계속하였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5시에 북경감옥에서 별세하였다는 부음이 가족들에게 전해지고 북경주재 일본 영사관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한 유해는 서울, 미아리공동묘지에 안장하였으며 1960년에 고향 원촌으로 이장되어 낙동강을 바라보는 곳에서 고이 잠들게 되었다.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과거부터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고, 수많은 침략에도 굴하지 않았던 한반도가 지금은 일제의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자신은 저항의 씨앗인 이 시를 이곳에 남기어 훗날 일어날 대한 광복을 기다린다는 저항시.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