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우 문화 칼럼] 작가와의 만남-박현정 작가님과의 만남

<백 년 만의 이사>와 독립운동, 3.1 운동 백주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에 관한 책을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백년 만의 이사>는 독립운동 후손들과 과거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메일로 진핸한 인터뷰의 답장 앞에는 정다운 격려의 인사말이 담겨 있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과 <백년만의 이사>에서 느껴진, 인물들을 보는 따스한 시선이 작가님의 분위기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백년만의 이사>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강산이는 댄스 워크숍에 참여할 돈이 필요하다. 댄스 워크숍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애를 쓰던 강산이는 댄스 교습비를 줄테니 불 난 집에 함께 가서 서류를 가져오자는 할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아래는 위 책에 대한 박현정 작가님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

 

남연우: 작가의 말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쓰셨다고 하셨는데요. 자료 수집 과정이 무척 궁금합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실화를 소재로 하는 작업을 즐겨하시나요.

 

 작가님: 잘 아시다시피 <백년만의 이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이야기예요.  유명한 독립운동가에 관한 책은 많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나 그들의 후손 이야기는 별로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 취재원을 찾는 일이 제일 어려웠어요. 어느 날, 서대문구 천연동에 독립민주유공자 후손들의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기사를 봤어요. 평생 내 집이라고는 가져본 적 없던 후손들이 ‘나라사랑채’라는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걸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그 기사를 보도한 방송사 기자에게 도움을 청했죠. 다행히 그분이 제 책에 큰 관심을 보이며 자신이 취재했던 담당기관과 취재원을 연결시켜주었어요. 나라사랑채에 사시는 심상훈 할아버지와 김성생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나게 되었어요. 두 분 이야기를 듣고 강산이 할아버지와 길림성 할아버지 캐릭터를 완성했죠. 물론 이번처럼 인터뷰까지 한 경우는 처음이지만, 작품을 쓸 때 취재를 꼭 하는 편입니다. <새앙머리 보름이>를 쓸 때는 주인공 보름이가 의녀 수업 받는 장면을 쓰기 위해 한의사 한 분을 집중 취재했었어요. <우리들의 빛나는>의 소재가 된 메르스 사태는 격리 병원이 있던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며 썼습니다. 취재한 사실은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작품 속에 남아 감동을 두 배로 준다고 믿거든요. 
      
남연우: 백년만의 이사를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작가님:  작품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한 시사 프로그램 PD가 자신의 SNS에 올린 두 장의 사진이었어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저택과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주택 사진을 나란히 올렸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진 위에는 이런 글을 달았어요. 하나는 친일파 후손의 집. 다른 하나는 독립을 갈망하다 '빨갱이 자식'으로 평생을 숨죽여 살아온 집. 어디에서부터 이 두 집안 사이에 놓였을 격차를 이해해야 할까.(후략) 친일파 후손의 삶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을 분명하게 비교해주는 사진이더군요. 그로부터 얼마 후, 작가모임에서 서울시 독립유적지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어요. 거기서 으리으리한 친일파의 집과 낡고 소박한 독립운동가의 집을 내 눈으로 확인하며 후손들의 삶에 강한 끌림을 받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역사동화를 기획하고 있다며 몇 가지 소재를 보내왔을 때, 저는 망설임 없이 독립운동가 후손의 이야기를 집어 들었어요. 사진이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봤으니 써라! 그게 네가 할 일이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한 걸 곧 후회했지요. 생각보다 이야기를 구상하는 일이 너무너무 어려웠거든요. 제목이 말해 주듯이, 무려 백 년을 거쳐 온 4대의 이야기예요! 역사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 한 세대 얘기도 벅찬 내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4대의 얘기를 한 줄기로 꿰려니 미칠 노릇이었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마다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 허물어져 가는 그 집 어딘가에 있었고, 거기서 강산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그들과 시난고난 함께 앓고 희희낙락 즐거워하며 마침내 작품을 완전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한 장의 사진이 무모한 도전을 가능케도 하는 법이랍니다. 
  
남연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가 썩 좋지 않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의도가 있으신지요.


작가님: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할아버지는 일제와 싸우고 손주는 가난과 싸운다’는 말은요?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끌어 모아 독립자금으로 쓰고 당신 역시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분이 바로 강산이 증조 할아버지였어요. 해방이 되면 독립운동을 하던 동료들과 새 나라를 건설할 꿈에 부풀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친일 완장을 차고 자신을 고문했던 앞잡이들이 해방 후에 처벌 받기는커녕 대한민국 공무원이나 경찰, 혹은 정치인이 되어 거들먹거리며 나타났으니 얼마나 기막혔을까요. 감옥에서 고생한 보람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빨갱이로 몰릴까 벌벌 떨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가족들을 돌볼 능력이 없었고,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었죠.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강산이 할아버지는 못 입고 못 먹고 못 배운 한을 가진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왜 하필이면 독립운동을 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그런 원망과 한을 가지고 살았다고 해요. 그리고 그것은 강산이 아버지 같은 2세대로 고스란히 이어지죠.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 70년대에 태어난 강산이 아버지는 전형적인 도시빈민의 삶을 산 사람이에요.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강제철거로 살던 집을 잃고, 외환위기가 닥쳐 학업을 포기하고,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잘 되던 미용실을 접어야 하는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아픔을 고스란히 겪었죠. 물려받은 재산도, 번듯한 학력도 가질 수 없었기에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사는 것만이 목표였던 그에게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사실은 한낱 쓸데없는 껍데기에 불과하죠.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부자가 좋지 않은 관계처럼 비쳐진 것은 바로 그런 각자의 고난과 울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맘 속 깊은 곳에는 힘든 삶을 살아온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안쓰러움, 동지애가 깔려 있다는 걸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남연우: 주인공 강산이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모범생’누나가 아닌 강산이를 주인공으로 정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작가님: 사실 주인공을 누구로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강산이를 주인공으로 선택했죠. 강산이는 딱 요즘 아이에요. 공부보다는 게임이나 아이돌에 관심이 많고 부자 부모를 갖고 싶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초등학생이죠. 느닷없이 자신의 방으로 밀고 들어온 할아버지가 밉고, 왜 우리 할아버지는 다른 집 할아버지들처럼 멋지고 용돈도 펑펑 주는 사람이 아닐까, 춤이나 추러 다니는 할아버지가 창피하기만 하죠.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앞으로는 길에서 만나도 아는 척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고 해요. 할아버지와 강산이의 관계가 최악이었다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나중에는 서로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잖아요. 오로지 ‘나’에게만 관심을 가졌던 아이가 ‘우리’를 이해하게 되고, 할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마음으로 함께 하게 되는 거죠. 작품을 쓸 때 주인공의 성장은 아주 중요한 요소예요. 사건을 겪으면서 주인공이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재미는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아주 중요한 덕목이죠. 그런 면에서 강산이는 주인공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졌고, 아주 잘 그려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까칠한 듯 허당끼가 있는 강산이와 깐깐한듯 유머가 넘치는 할아버지의 ‘조손(祖孫)케미’는 분위기를 훈훈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장치이기도 했어요.

 

남연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는데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작가만의 설정이 있으시면 살짝 알려주세요.


작가님:  책 중간 중간에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죠. 그건 불 탄 집을 정리하면서 강산이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 이야기예요. 일종의 내레이션이죠. 우리는 할아버지 얘기를 들으면서 강산이랑 비슷한 나이의 소년 대호가 어떤 격변의 삶을 살았는지, 어떤 고민에 싸여 있는지 알게 돼요. 할아버지 이야기는 어린 동생 대숙이가 피난을 가던 중 너무 배가 고파 말라비틀어진 고추를 따먹고 탈이 나는 장면이 클라이맥스예요. 대숙이는 위험한 민간요법인 돼지똥물을 먹고 결국 숨을 거두고 말죠. 그 일은 할아버지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죠.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할아버지는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고 맛난 거 사달라고 조를 나이에 일제의 억압과 전쟁의 상처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어요. 역경의 정도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각종 스트레스에 치여 사는 우리는 공감할 수 있어요. 우리 할아버지들도 무척 힘든 사춘기를 보내셨구나, 매일매일 우울하고 불행한 느낌이었겠구나 하고 말이죠. “우리 아버지라고 그런 시대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나. 이렇게 될 줄 알고 독립운동을 했겠느냐 말이야. 그분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선택이었던 거지. 우리한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고 싶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거야.”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할아버지의 이런 진심을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하는 서류가방은 알 거예요. 그리고 이제는 강산이도 알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남연우: 평소 캐릭터나 소재를 어떻게 구성하고 구체화하시나요? 떠오른 캐릭터/소재를 어떻게 보관하시나요?


작가님: 뉴스에서 소재가 될 말한 것을 그때그때 클리핑해서 내 카톡방에 모아둬요. 느닷없이 생각나는 글감들도 내 카톡방에 저장해두죠. 하지만 저는 약간 게으른 편이라 그 글감들을 바로 작품화하지는 못해요.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오래 키우는 편이죠. 어느 정도 캐릭터가 살아 움직여서 이야기 윤곽이 드러낼 때까지는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아요. 약 3분의 1 정도의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싶을 때 비로소 앉아서 한 번에 써내려가는 편이에요. 이 방법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위험하죠. 좋은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리길 잘 하거든요. 그러니 따라하지는 말길 바라요.     


남연우:  작업과정이 보통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작가님:  저는 보통 자료조사를 하면서 캐릭터, 얼개를 동시에 생각해요. 캐릭터와 주요 사건, 이야기의 순서가 아주 엉성하게 만들어지면 쓰기 시작합니다. 얼개를 꼼꼼하게 짜지는 않아요. 이번에는 얼개를 제대로 짜볼까 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냥 작품을 쓰고 있더라고요. 도무지 계획성이라고는 없는 편이라서 쓰고 싶을 때 며칠 동안 작업을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에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도 책상에 붙어 있지만 안 쓸 때는 며칠 동안 한 자도 안 써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반드시 마감이 정해져 있어야 해요. 작가 친구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남연우: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일단, 다양한 일을 골고루 도전해보고 천천히 작가의 길로 오세요. 너무 이른 시기에 자신을 한정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무척 다양한 일을 하다가 마흔이 넘어서 동화작가가 되었어요. 여성지 기자, 잡지와 방송 프리랜서, 드라마 작가, 기간제 교사, 출판 편집기획자. 한 우물을 깊게 파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일을 경험한 것이 글 쓰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여러분은 내가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흥미롭고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아요. 그러니 가능하면 신나고 재미있는 경험들을 많이 하고 비로소 책상 앞에 앉길 바라요. 동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처음부터 동화만 습작하고 앉아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 작가가 될지도 몰라요. 두 번째로, ‘뜸 들이는 시간’을 즐기세요. 저희 집에 여러분 또래의 청소년이 한 명 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가 뭔가를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해요. 숙제를 하든 영화를 보든 대화를 하든 생각하고 유추하고 기다리기를 싫어하고 당장 결과를 알고 싶어 해요. 아마도 이것이 원하는 내용만 골라 보거나 빠르게 결과를 공유하는 SNS 세대들의 특징이 아닌가 싶어요. 작품을 쓰고 난 후 뜸을 들이는 시간은 자신을 객관화 하는 과정이에요. 한 걸음 떨어져서 전혀 다른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시간이죠. 그러니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다면 천천히 가고 기다리는 습관을 들이길 바라요. 그런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최고의 작가가 될 거예요. ----------------------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이란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정작 그 후손들은 현재, 경제적 가난함에 시달리며 자신의 조상을 원망하는 상황에 처했다. 도리어 친일파라고 불리는 반민족 행위자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뿌리깊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따뜻한 이야기로 풀어내신 작가님에게 다시금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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