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의 시사/인문학 칼럼] 당신이라면 그 문을 여시겠습니까?

영화 <부산행>으로 보는 군중심리와 이기심

 

 

지난 2016년 전국을 오싹하게 한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액션, 스릴러 장르의 <부산행>은 정체불명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대한민국에 긴급재난경보령이 선포된 가운데 방역에 성공했다는 도시, 부산으로 안전하게 떠나길 바라는 생존자들이 'KTX열차'를 주 배경으로 하여 극한의 사투를 다룬 영화이다. (참고: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0966#story) 정체불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좀비'라고 불리는데, '좀비'라는 소재는 빅터 헬버린 감독의 <화이트좀비(1932)>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는 강범구 감독의 <괴시(1981)>를 최초로 대중에게 알려지며 꾸준히 흥미 있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화를 분류하는 데 있어 '좀비 영화'라는 새로운 이름의 장르로까지 불리게 되었고 더 친숙한 소재가 되었다.

 

'좀비'란 무엇인가? 좀비는 사전적으로는 '살아 있는 시체'를 의미하며 (인용: https://ko.dict.naver.com/#/entry/koko/d29922017b504794b87aa46e520cd15f), '환상동물'로 분류되어 구사노 다쿠미의 <환상동물사전>에는  "중남미 지역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시체라서 썩어 있기도 하다."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인용: https://terms.naver.com/list.nhn?cid=41882&categoryId=41882&so=st4.asc)

 

영화 채널 'OCN movies'에서는 5월 5일 화요일 오후 5시부터 영화 <부산행>을 재상영하였는데, 최근 '<부산행>의 후속편'이라 불리는 영화 <반도>의 제작 소식과 2020년 개봉 소식이 알려지며 <부산행>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필자 역시 <부산행>을 다시 보며 흥미로운 점을 몇 가지 발견하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라는 수식이 자연스러운 현실, <부산행>에서 다루는 상황, 소재 등이 현실과 밀접하다는 것이다.

 

작중, 대전에 경유한 열차는 "광장에 가면 대피할 수 있다"라는 지침과 함께 승객들을 하차시킨다. 석우(공유 분)는 민대위(정영기 분)로부터 더 안전하다는 대피 방법을 전해 듣고 딸 수안(김수안 분)과 함께 다른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대전은 이미 안전하지 못한 상황, 석우(공유 분) 일행을 포함, 위험에 처한 승객들은 다시 열차로 돌아가기 위해 감염자들과 사투를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생존자와 좀비가 각 칸에 뒤엉킨 채로 열차는 출발하게 된다. 함께 9호 칸에 있던 석우(공유 분), 영국(최우식 분), 상화(마동석 분)는 각자의 일행을 만나기 위해 13호, 15호로 가고자 한다. 하지만 칸 사이사이에 감염자가 있는 상태, 감염자의 습성을 파악한 9호 칸 일행은 무사히 13호 칸 생존자를 구출하여 최종적으로 더 많은 생존자가 모인 15호 칸으로 이동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때 용석(김의성 분)은 그들이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상처 하나라도 없을 수 있겠냐며 그들을 거부한다. 그 말 한마디로 15호 칸 생존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용석(김의성 분)을 암묵적인 리더로 생각하며 그의 지휘 아래 문을 막기 시작한다.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15호 칸과 감염자들이 모여 있는 13호 칸을 사이에 두고 14호 칸 사람들은 한쪽에서는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감염자들의 침입을 막으며 사투를 벌인다. 조금 '더' 명확하고 안전한 상황을 확보하고자 조금이라도 감염의 여지가 있는 생존자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용석(김의성 분)을 포함한 15호 칸 생존자들의 입장이다.

 

15호칸 생존자들과 석우(공유 분) 일행의 입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선'과 '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 역시 누군가의 시점을 통해 만들어진다. 즉, 일방적인 관람자의 입장에서 '중립'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선과 악을 섣불리 나누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캐릭터 설정은 관람자가 주인공(주로 '선'의 입장에 있는)에게 더욱더 감정이입하고, 스토리 설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필자가 처음 <부산행>을 관람하였을 때 역시 석우(공유 분) 일행의 입장에서 용석(김의성 분)을 포함한 15호 칸 생존자들을 비난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다시 보니, 15호 칸 생존자들의 행동이 무조건 '틀렸다'라고 비난하기는 섣부른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사회, 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받고 학습되어왔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 도달하였을 때 역시 서로를 도울 수 있을까? 나 먼저 살기 바쁘지 않을까? 용석(김의성 분)은 역무원이며 역의 상황, 열차의 운행에 관해 잘 알고 있다는 것 하나로 그들이 탑승한 열차의 담당인 동료 역무원으로부터 무전기를 빼앗아 기장과 직속으로 소통하며 상황을 지휘한다. 15호 칸에 함께 있던 생존자들은 그의 말을 신뢰하게 되고, 그의 큰 액션은 곧 '일리 있는' 말과 행동이 된다.

 

인간의 군중심리와 이기심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이다. 석우(공유 분) 역시 대전역에서는 딸과 함께 본인만 생존하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을 '이기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따른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관해 논하는 문제는 쉽게 정리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부산행>에서 대조되는 두 입장-15호 칸 생존자들과 석우(공유 분) 일행-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본성에 충실하였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최선의 절충점을 찾아 평화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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