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수의 생명과학 칼럼] 총, 균, 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를 읽고

'균'을 중심으로 인간과 병원체의 진화적 경쟁관계, 그리고 지리적 격리의 중요도에 대해

생명과학 시간에 『총, 균, 쇠』를 1년 동안 조금씩 읽으면서 독후활동에 대한 탐구보고서를 쓰는 활동을 통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 중에서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총, 균, 쇠』의 제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을 중심으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등을 제외한 본문만을 기준으로 하자면 제1부와 제2부가 총 235면(47~281면), 제3부가 총 156면(285~440면), 제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이 총149면(443~591면)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등을 모두 읽는다면 700면이 넘는데, 인류학, 지리학, 역사학, 생물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책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같은 분량의 다른 책들보다 훨씬 방대한 내용의 책으로 느껴진다는 부담도 있지만, 그만큼 꼼꼼히 읽어나가면서 얻은 지식의 총량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필자를 비롯한 많은 독자가 느꼈을 보람과 기쁨이 이 책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계속 붙들어두고 있는 원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되었다.

 

 

3부 제11장의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은 제목처럼 이 책의 3가지 중심 대상 중 하나인 “균"에 관해 저자가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16세기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코르테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잉카제국을 정복한 피사로가 각각 소수의 군대만을 가지고도 손쉽게 승리를 거둔 원인 중 하나가 원주민들이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천연두 병균을 스페인 사람들이 옮겼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고고학적 발굴 등에 의해 새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북미의 인디언의 경우도 원래 2천만 명가량에 달하던 인구가 콜럼버스 도착 후 1~2세기 안에 불과 100만으로 감소할 만큼 유럽인들이 옮긴 병균에 희생되었다는 것(307면)이 이 책의 설명이다. 이런 경쟁관계를 묘사하는 데 딱 어울리는 표현이 다름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인간과 병원체 사이의 격화되는 진화적 경쟁 관계”(책 292면)일 것이다. 이런 진화적 경쟁관계가 제대로 성립되지 못했던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대륙은 저자의 설명처럼 유럽의 문명인들과 접촉하는 순간 그들이 자연스레 옮긴 병균에 속수무책이었다. 최근 박쥐에서 유래되었다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아직 진화적 경쟁 관계가 성립되지 못한 전 세계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현 상황도 유사한 사례인 셈이다.

 

이런 유럽인들의 병균은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가축과 접촉하며 사는 과정에서 감염된 병원균이며, 이런 병원균은 저항하는 우리 몸속의 항체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항체가 이미 인식한 병원균의 분자구조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속임수를 통해 항체의 저항을 피하는 방법을 진화 시켜 왔음(293면)을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미국의 제임스 앨리슨 교수와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수)의 연구업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종전까지 쓰였던 ‘표적 항암제’는 특정한 구조의 암세포만을 식별해 공격하는 방식이라서 돌연변이를 통해 이를 회피하는 암세포에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는데, 이들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업적은 특정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 몸속 면역세포의 기능을 더 활성화해 암세포의 회피에 대해서도 작용하게 하는 ‘면역 항암제’ 방식이다. 물론 돌연변이를 통한 생명체의 환경 적응능력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니만큼 이번 ‘면역 항암제’에도 암세포가 다시 적응하여 또다시 새로운 암 치료법이 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12장 “식량 생산 창시와 문자 고안과의 밀접한 연관”의 경우, 지식전달의 수단인 ‘문자’가 어떤 지역에서 창조되어 다른 지역들로 전파된 역사적 경로를 먼저 묘사하고 있다. 이런 경로를 잘 관찰하면 문명발달에서 뒤처진 대륙이나 지역들이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었다는 점이 문자 전파뿐만 아니라 발명품 등의 확산에서도 큰 장애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315-316면) 저자는 주장한다. 제13장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에서도 유라시아 대륙인들의 지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아메리카 및 오세아니아보다 더 유리하였기 때문에 발명품 확산이 잘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필자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너무 지나치게 ‘지리적 격리’ 여부를 강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일 ‘지리적 격리’만을 가지고 따진다면, 중국보다 훨씬 지리적으로 격리되었다고 볼 수 있는 유럽(가령 알프스산맥, 피레네산맥 등과 도버해협 등)이 오히려 중국을 반식민지로 둘 만큼 먼저 발전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사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끝부분까지 다 읽었음에도 내 마음속에서 자라난 앞서 의문, 즉 ‘지리적 환경이나 지리적 격리가 그토록 문명발전에 중요하다면 왜 유럽이 중국보다 근대 문명 발전에서는 더 앞설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 관해서는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저자는 적어도 이런 의문이 생길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에필로그’에서 나름의 답변을 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중국 전역이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리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15세기 바다를 주름잡은 선단(저자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명나라 영락제 시절 환관 ‘정화’의 남해원정단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함)을 모두 해체하라는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 내려졌을 때 중국 전체에서 혁신이 중단되는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저자의 이런 답변 내지 반박은 잘 수긍이 가지 않았다. 정치적 통일이 너무 지나치면 혁신이 중단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지만, 오늘날까지 서구 문명의 찬란한 시절로 기억되는 ‘로마제국’의 경우 무려 천 년 이상 통일제국으로 유지되었음에도 혁신 중단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반대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통일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지 여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남해원정단의 선박을 해체하라는 중앙정부의 명령이 설령 내려졌더라도 만약 당시의 중국인들이 가령 종교혁명 당시의 ‘마틴 루터’나 그를 따르던 사람들처럼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올바른 길을 가겠다는 자유로운 의지가 충만하였다면 역사의 방향은 전혀 반대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어떤 개인, 더 정확하게는 시대를 바꾼 큰 인물의 역할에 관해서도 독자의 의문이 제기될 것을 미리 짐작했는지 저자는 알렉산더 대왕이나 히틀러의 예를 먼저 언급하면서 그런 인물들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큰 흐름은 여전히 변함없이 같은 방향으로 진전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중요 인물들이 역사 진전에서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그런 인물들이나 그를 지지한 사람들의 자유 의지나 노력이 지리적 자연환경만큼이나 역사 발전에서 나름 중요하지 않았나?’라는 의문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게 되었다.

 

다만, 그런 의문이 계속 남아있음에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이 책의 가치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명발전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나 노력도 중요할 수 있지만 이미 주어진 지리적 자연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나조차도 부정하기 어렵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생물학적 조건 등 자연환경이 가진 중요성을 더욱 절감한 상황이다. 앞으로 기회 되는대로 조금 더 세밀하게 이 책을 다시 읽고 그 방대한 지식과 저자의 독특한 접근 자세를 나만의 것으로 체화시킬 볼 예정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이미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서 누리고 있는 명성만큼이나 훌륭한 양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대한 분량의 압박을 느껴 제대로 읽을지 말지 혹시 주저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런 망설임을 어서 거두고 한번 일독해 보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지리적 격리’를 중요시하는 저자의 분석은 유라시아 대륙이 아메리카 및 오세아니아 대륙보다 문명 발전에서 앞선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유라시아 대륙 중 유럽이 중국보다 먼저 근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까지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인간의 자유의지 등 다른 요소들도 문명발전에 중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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