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민의 언론 칼럼 1]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도 언론이 있었다고

우리 역사 속 언론의 발자취 따라가기

매일 수없이 많은 일들이 우리 곁에서 일어난다. 사건, 사고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쉬지 않고 공유한다. 그중 생각이 비슷한 이들끼리 모이기도 하고, 생각이 서로 다른 이들 사이에는 분쟁도 일어난다. 어쩌다 한쪽의 생각이 우세하면 많은 사람들도 그쪽으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언론'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 언론의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사실 언론은 필수적이라기보다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다르고, 이러한 생각 또는 여러 사실을 공유하는 것은 인류 자체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은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했고 인류와 함께 발전을 거듭해왔다. 우리 역사 속 언론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언론의 기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언론과 약간은 다를 수도 있겠다. 역사의 흐름에서 언론은 왕, 족장 같은 통치 권력과 반대되는 생각을 표출하는 역할을 했다. 통치 권력이 있다면 그 세력을 견제하는 세력도 꼭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초기 국가부터 현대까지의 언론을 분석해 보는 데에는 언론의 이러한 역할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겠다.

 

초기 국가가 형성될 시기에는 왕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이 있었는데, 이 당시에는 왕의 독자적인 권한이 세지 않아 자기 부족에 대해서는 각 족장이 직접 다스렸다. 또 국가의 중요한 사안은 왕과 족장이 함께 논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통치 체제에서, 왕은 중대사의 결정 권한을 족장과 나누어 가지면서 왕의 생각과 반대되는 족장의 의견도 함께 수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당시 언론의 역할은 족장이 도맡은 것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삼국 간 정복 전쟁을 주도한 왕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마침내 중앙집권국가가 탄생했다. 특히 신라에서는 신분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골품제가 등장하였는데, 이 중 6두품은 성골, 진골과 달리 많은 제약이 있었다. 최치원 같은 6두품 유학생들은 이 골품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반신라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6두품의 불만 표출은 부당한 제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언론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또 발해에서는 '어사대'라 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기구가 있었는데, 권력을 감찰하고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을 한 것에서 큰 의의가 있다.

 

고려 시대에는 '어사대'와 '낭사'가 언론을 담당하였다. 낭사는 언관이라고도 불리며 임금에게 단호히 조언하는 역할을 했다. 정치 운영에 있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또 임금의 올바르지 못한 행실을 적극 비판함으로써 더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 정치 운영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자 이러한 기구가 따로 있었다는 점에서 언론이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는 어느 한 사람만 참여해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는 언론이 빠질 수 없으며 현대에도 언론은 정치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공론 정치'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권력 분산과 언론 활성화를 통한 정치를 말한다. 특히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3사가 언론 기능을 담당하였다. 3사는 왕뿐만 아니라 대신들을 견제하면서 권력 독점과 부패를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붕당'이 생겨나면서 공론 정치를 더 활발하게 만들었다. 붕당은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이들끼리 모인 것이었으나 각 붕당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언론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 붕당은 상대를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고 권력 독점만 추구하는 등 그 기능이 변질되었다. 사실 현대의 정치 정당은 붕당과 매우 흡사하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이 각 정당이고 토론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의 정치 정당의 시작이 붕당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대의 정치 정당도 과거 변질된 모습의 붕당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진정한 정치의 목적은 상대 정당을 비판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을 위한 정책 실현인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현재를 개선하고 미래의 것을 예방하는 데는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언론은 더 근대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언론이 신문 등 활자매체를 통해 그 역할을 하였는데, 정부에서는 한성순보를 발간하여 정부 정책을 전달하고 홍보하는 데 취지를 두었다. 한편, 독립협회 같은 민간에서는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민중을 계몽하고 정부를 비판하였다. 또 독립협회는 자유 민권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 운동의 목적에는 언론의 자유 보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언론의 자유가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당시 국민들이 근대적 시민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후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 언론은 애국계몽에 크게 힘썼다. '신문지법' , '치안유지법' 같은 일제의 언론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러 민간신문들은 일제 탄압의 부당성과 국가 정세, 그리고 독립운동에 관한 소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또 애국계몽운동은 언론 활동을 통해 민족의 실력을 기르자는 운동으로, 언론이 국권 회복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후반에는 한글 보급, 농촌 계몽을 위한 수단으로 언론 기관이 이용되기도 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현대 우리 정부도 언론 탄압을 지속했다. 반정부적인 언론에 대해서다. 또 '언론사 통폐합', '언론기본법', '보도지침' 등을 시행하였는데 이는 통치 세력에 유리한 정보, 왜곡된 정보만을 보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된다. 당시 통치 세력의 권력을 기르는 데에는 큰 효과를 주었을지 몰라도 공권력을 이용해서 언론의 자유를 강압적으로 침해했다는 점에서 언론 퇴보의 시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들은 알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진실을 알 권리도 분명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인데 이 언론의 보도 방향을 통제하는 것은 당시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본다. 다시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기 시작한 것은 6.29 민주화 선언 이후이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언론이 탄생했다. 오늘날 언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고, 언론은 역사 속에서 매 순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현대에는 뉴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언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언론이 발전하면서 여러 문제점들도 부각되는 상황이다. 언론 사이의 과도한 경쟁으로 소비자(독자, 시청자)의 클릭 한 번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보도가 성행하고 있다. 또, 가짜 뉴스의 문제점도 여전히 심각해 언론이 신뢰성을 잃어가고 있지 않나 싶다. 소비자도 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보다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에 따라 언론 윤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지만 언론의 자유와 그 제한의 기준은 어디까지인지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이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로 남을 것이고 더 나은 언론을 만들기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95201&cid=46668&categoryId=46668#__datalab 금성출판사 고등 한국사 교과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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