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빈의 교육 칼럼] 사교육비 18조의 교육 디스토피아

 

 

최근에 필자는 한 미국 중등 교사와 한국 중등 교사의 대화를 보게 되었다. 미국 교사가 ‘미국 학생들은 하루 두세 시간 정도 학교 숙제를 하는데, 한국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얼마 정도의 숙제를 내주십니까?’라고 묻자 한국 교사가 ‘학교에서는 숙제를 잘 내주지 않는다. 학원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답한 내용이었다. 대답을 들은 미국 교사는 큰 충격을 받았고, 처음에는 아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 대화 내용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 교육 상황을 너무나도 잘 요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본 뒤, 이러한 대한민국의 교육을 받는 학생의 입장인 필자는 골똘히 생각했다. 근 몇 년간 학교 숙제를 학원 과제만큼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경험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말이다.(여기에서 숙제는 수행 평가와는 별개의, 평가에 영향이 없는 숙제를 말한다) 그 후 도출된 결론은 ‘없다’였다. 이 일을 통해 간과하고 있던 우리나라의 왜곡된 교육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배움 그 자체에 가치와 행복을 느끼는 학생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극히 드물다. 학생들은 본인의 의지나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해 학습하는 경향을 많이 보인다. 그리고 각각의 외부 요인들과 사교육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억지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 요인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고자 한다. 미련, 연쇄, 그리고 경쟁.

 

첫 번째로 미련은 학생 개인의 미련이 아닌 부모 세대의 미련을 뜻하고자 했다. 부모 세대가 학창 시절 복합적인 사정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가 이루길 원하는 모습, 그리고 이에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 이제는 소설로 쓰기에도 너무 흔한 소재이다. 하지만 이 미련으로 인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수두룩하다. 어른들이 가졌던 꿈을, 가고 싶어 했던 대학교를 위해서 공부한다. 하지만 때때로 그들에게 ‘내가 왜 그래야 하지?’라는 질문이 날아든다. 본래 그 목표는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이 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열정이라고 생각했던 원동력은 무기력이라는 본질을 드러내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무기력에 빠진 학생을 채찍질하는 기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학습에 대한 부모의 욕구가 높은 가정일수록 더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한다는 우리나라의 통계가 있기도 하다. (참고: 통계청 2019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보고서)

 

두 번째, 연쇄는 어떤 현상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필자는 현대에서 학생들이 공교육에서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는 가장 큰 계기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라는 생각이다. 학교의 전교 1등이, 반 우등생이, 친구가 하기 때문에 자신도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맹신하는 것이다. 이 생각은 연쇄 효과를 이끌어내 더 많은 학생이 사교육을 하도록 만든다. 그 근거는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2019년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이 전년보다 2% 증가했고, 학생 4명 중 3명이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인용: 통계청 2019 한국의 사회지표)

 

마지막으로, 경쟁이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사교육 열풍의 목적이자 주범이 되는 단어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두 키워드를 아우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고, 연쇄 효과의 결과물도 결국은 경쟁에 뛰어드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체는 절대 부정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경쟁은 많은 학생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 자신이 성장함을 깨닫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의 어두운 면만을 극대화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입시 전쟁 아닌가. 원래는 경쟁이었던 것이 사교육을 거쳐 심화되어 이제는 전쟁이 되었다. 개인의 주체적인 꿈과 목표를 가진 학생은 이 전쟁을 수월하게 헤쳐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직 시험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어기제로 사교육에 의존한다면, 혼자 힘으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인생에 진실하게 도움이 되는 학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경쟁에 의한 동기 유발은 가장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강국. 우리나라가 다른 몇 개의 나라와 함께 불리는 이름이다. 교육 강국이라는 단어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국가에서 진행하는 공교육을 떠올린다. 공교육의 커리큘럼이나 그에 대한 정책들이 학생들을 위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국가를 떠올린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는 교육 강국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현재 인재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자본을 들여 사교육을 통해 줄 세우기 전쟁에서 승리하고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공교육의 지분은 이미 사교육에 밀린 지 오래고, 우리나라는 사교육 강국이자 교육 디스토피아가 되었다. 작년 한 해 동안 국민이 사교육에 지출한 총비용은 18조 6,223억 원이라고 한다. (인용: 통계청 2019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보고서) 18조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탄생한 우리나라의 인재들은 전부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까? 모두가 살면서 18조의 값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교육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려면 시대를 직시하고 공교육과 사교육의 지분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