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서의 인문 칼럼] 내가 군주가 될 상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나서

16세기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은 그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이 책은 신성 모독적인 발언으로 교황의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나, 당시 유럽의 많은 군주들의 지침서가 되기도 하였는데, 본디 이 책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젊은 군주를 위해 쓰인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주인에게는 사랑받지 못하였던, 현대에 와서 우리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이 책을, 마키아벨리는 왜 쓰게 되었으며 어떤 내용을 담았는가. 그리고 그가 내세운 군주상에 대해서 알아보며 이것의 정당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중세시대 때 유럽에서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한 프랑스,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 등의 강대국들이 있었고, 이탈리아는 당시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교황령, 나폴리 왕국의 5개의 강대국들이 서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렌체는 메디치가의 코시모 데 메디치의 통치 아래에서 예술이 발전하며 르네상스의 시작을 열고 강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는 이러한 피렌체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사람인데, 이에 로렌초 일 마니피코, 즉 위대한 로렌초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파치가의 음모로 동생이 죽고 그 배후에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있는 것을 알고 메디치가를 교황청에 진출 시켰는데, 그의 둘째 아들인 조반니 데 메디치는 추기경이 되었다. 그런데 1492년 로렌초가 죽고 나서 피렌체는 위기에 빠졌다. 그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 다른 유럽의 강대국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1494년 프랑스가 나폴리왕국의 왕위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교황청에서는 알폰소 2세를 지지하였지만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인데, 여기서 밀라노가 프랑스를 지지하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이때 가장 피해를 본 곳이 피렌체였다. 나폴리왕국과 교황청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으며 부유하지만, 자국의 군대가 없었고, 강력한 통치자가 부재한 상황이어서 만만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피렌체를 살리기 위해 강대국 사이에서 동분서주로 노력한 외교관이 마키아벨리였다.  그러던 중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지원으로 1512년 로렌초의 셋째아들이 피렌체에 재집권하면서 그는 반메디치 세력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다가 1513년 로렌초의 손자가 새 군주로 등장하면서 마키아벨리는 특별사면되었다.  하지만 더는 그가 설 자리가 없었기에 그는 피렌체의 발전을 위하여 혹은 자신의 앞날을 위하여 그동안 쌓아왔던 국제 정세와 군주들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그 지침을 제시하는 이 <군주론>을 써서 피렌체의 젊은 군주에게 바치게 된 것이었다. 1 

 

그래서 이 책에서는 먼저 군주국의 종류를 세부적으로 나누며 각 군주국에 따른 군주의 태도와 자질에 대해서 얘기하고, 이러한 군주들이 가져야 할 요소와 덕목, 그리고 운명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유럽의 인물들을 예로 들며 이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 중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마키아벨리의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종종 그가 인간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가 드러나는데, 이는 꽤 적나라하고 공격적이라 받아들이기 조심스럽다. 

 

제 17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인자함과 잔인함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그는 군주가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지, 두려움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동시에 둘 다 느끼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사랑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한다. 2 

 

"인간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고 기만에 능하며, 비겁해서 위험을 피하려고만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 그래서 군주가 은혜를 베푸는 동안에는 군주에게 온갖 충성을 다 바칩니다. 그러나 정작 군주에게 필요할 때 등을 돌립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그들의 약속만을 믿고 그 약속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아 다른 대책 마련에 소홀한 군주는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3

 

사람은 은혜를 베풀면 보답하지 않고 오직 두려움에만 복종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덕과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학교에서 다정하게 대하는 선생님과 엄하게 대하는 선생님을 생각해보자. 간단한 심부름을 부탁받는다거나 교훈이 담긴 말을 들을 때 누구의 말을 더 따르고 싶은가. 당연히 다정하게 대하는 선생님일 것이다. 그런데 숙제에 관한 지시라고 생각했을 때, 만약 이 숙제를 하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미루고 싶은 상황일 때는 어떤가. 다정한 선생님의 지시라면 이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송스러움, 그리고 그로 인한 선생님의 실망에 대한 생각 때문에 숙제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엄한 선생님의 경우 이 숙제를 하지 않으면 받게 될 불이익과 선생님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숙제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자와 후자 중 학생들이 숙제를 더 잘해올 경우는 어느 경우일까? 학교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후자의 경우 숙제를 안 해오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으나 전자의 경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이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한에서는 다정한 선생님의 말을 들었지만, 자신의 자유가 침해받을 때에는 엄한 선생님의 말을 듣는다. 물론 학교와 나라의 상황은 큰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를 볼 상황에서 신의 보다는 두려움에 더 복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박의 여지가 있다. 시민혁명, 민주화 운동과 같이 두려움으로 억압하는 군주에게 결국 사람들은 복종하지 않고 공격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미움"받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서, 비록 사랑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받는 일만은 피해야 합니다. 미움받지 않으면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4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두려움의 존재로 군림하며 사랑은 받지 못하되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백성 및 신하들의 재산과 그들의 부녀자들에게 손을 대지 않고, 누군가를 처형할 일이 생기더라도 적절한 명분과 명백한 이유가 있을 때로 제한하고, 이중 특히 타인의 재산에 절대로 손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5 이것은 다시 말해 절대적으로 원칙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즉, 여기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잔인함이란, 자신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처벌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법률과 원칙에 의거하여 처리하고 다만, 인정에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절대 이들에게 자비와 관대함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잔인함을 바탕으로 통치하는 군주에게 사람들은 복종할 것이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피해가 타당하고 명분이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반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앞의 엄한 선생님이 숙제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숙제를 해오라고 한다면 숙제를 해오긴 하겠지만 분명 반발이 있을 것이다. 또 숙제를 안 해왔을 때 받는 처벌에 대해서 어느 날은 급식을 제일 나중에 먹게 하다가 어느 날은 깜지를 열 장을 써오라고 한다면 이 또한 반발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 숙제는 어떤 학습능력을 키워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깜지를 20장을 써오게 한다는 원칙이 정해져 있으면 쉽게 반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숙제를 하면서 점점 자신의 학습능력이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느낀다면 어떨까? 

 

마키아벨리는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인자함이라고 하였다. 그 예로,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를 들었는데, 그는 무자비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엄격한 조치로 로마냐 지방의 질서를 회복하고 통일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평화로운 지역이 되었다. 반면에 피렌체인은 잔인하다는 평판을 피하기 위해 피스토이아가 붕괴하도록 방치하였는데, 이 경우 나라를 망하게 한 자비보다 나라를 부강하게 한 잔인함에 오히려 자비롭다고 여길 것이라는 것이다. 6 맞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엄한 선생님 덕분에 자신이 더 발전하였다면 오히려 더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 과정에서 있었던 가혹한 처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의 얘기다. 앞의 예시로 깜지 쓰는 것을 들었지만 만약 그 처벌이 체벌이었다면 어땠을까. 숙제를 안 해올 때마다 20대씩 맞는 것이다. 그래도 이것을 자비롭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보았을 때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군주론>에서는 이 부분 외에도 식민지를 만들어라, 약속을 어겨라, 필요하다면 악행을 서슴지 마라와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면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들에서 그는 결론적으로 국가의 부강, 다수의 행복만을 위하며 소수의 피해는 무시하고, 군주의 신변을 위해서는 나머지 것들은 무시한다. 이러한 태도를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에서 정의와 나라의 부강이 공존할 수 있냐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최초로 도덕과 정치를 분리했다. <군주론>에서 그는 여러 사례들로 자신이 보고 경험한, 혹은 공부한 살아있는 혹은 살아있었던 군주들을 들었다. 분명히 그의 군주상이 적용되는 세상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러한 군주상이 적용되지 않을 세상을 찾는 것이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찾는 것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 참고 : 군주론 p.11-13

2. 참고 : 군주론 p.153

3. 인용 : 군주론 p.153

4. 인용 : 군주론 p.154

5. 참고 : 군주론 p.154

6. 참고 : 군주론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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