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우의 영화 다시보기] 소년이 우는 이유를 로봇이 알았을 때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1991) - 냉혹한 겉모습뒤에 숨겨져 있던 터미네이터의 인간스러운 모습

 

이제 네가 왜 우는지 알아.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는 일이지.(I know now why you cry. But it's something I can never do.) - T-800의 작중 대사

 

1920년대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펙이 쓴 ‘로숨의 유니버셜 로봇’에서 로봇의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 오늘날까지 인간과 로봇의 관계는 각종 예술, 문화 작품에서 다뤄지고 있는 소재이다. 특히 예로부터 로봇에 대한 사람의 은근한 공포심과 경쟁심은 곧 인간과 로봇의 싸움을 그린 영화작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계에서 인간과 로봇의 싸움을 통해서 인간과 로봇의 우정을 표현한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명작은 누구나 위에서 말한 요소를 완벽하게 만족시켰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1984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든 1편이 배경이 된다. 1편의 경우에는 50 ~70년대 초를 대표하는 괴수들이 현대의 사람들과 싸우는 방식의 당대 할리우드식 구성을 그대로 가져와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타임 패러독스, 로봇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당시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파격적이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분명히 현대를 배경으로 해서 어떠한 이유로 싸움이 일어나게 된 것은 같지만, 그 상대는 이전과는 다른 살인 로봇이며, 어떠한 공격에도 돌덩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태연하게 목표물을 제거하려는 그 모습에서 관객들은 희열과 공포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속편인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의 경우에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SF적 요소를 갖춘 추격전 영화이지만 당대를 지배하고 있던 괴수 물과 같은 B급 영화적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또 전작에서는 인간을 죽이려는 등 냉혈한 모습을 보여준 터미네이터가 아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터미네이터가 인류의 편에 서서 또 다른 터미네이터와 싸운다. 이런 구성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터미네이터2는 여러모로 새로운 시도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제작자 또한 이런 이야기를 카메론 감독에게 들으면서 “이러면 너무 어린아이들 영화 같지 않을까요?”라고 한 일화도 있다.

 

더 자세히 영화를 다루기 전에 내용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초반에는 전작에서 등장한 사라 코너와 그의 아들 존 코너, 그리고 이들을 먼저 찾기 위해서 경쟁하는 두 터미네이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먼저 존을 찾아낸 터미네이터 T-800은 존을 제거하고자 하는 터미네이터 T-1000을 저지하고 사라 코너와 합류하게 된다. 중후반에서는 터미네이터의 탄생 계기가 되는 CPU와 부품을 제거하려고 T-1000과 싸우는 구도를 보여준다.

 

특히 이 싸움 구도에서는 구형 모델인 T-800이 어떻게 해서든지 신형인 T-1000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막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당연히 구형 모델인 T-800이 전투력에서 밀리기 때문에 T-800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 장면을 통해서 더욱 필사적이고 간절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는데, 이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아이언맨이 슈트 하나로 타노스라는 존재와 필사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표현한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단언컨대 T-800과 존의 이별 장면이다. 인간 소년 존 코너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 T-800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인간과의 교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존으로부터 인간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존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는 인간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가 간다며 말하는 장면은 인간과 로봇이 교감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들 역시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에 더욱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강조된다. T-800의 경우에는 분명히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강하지만,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사라 코너의 경우에는 자신의 삶을 망친 터미네이터를 증오하지만, 이번만큼은 서로 협력해서 아들을 지켜야 한다. 존은 영화의 핵심과 같으며, 제거되는 순간 인류의 미래가 바뀌게 된다. 이처럼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을 가졌지만 단 하나의 목표, 존을 위해서 서로가 협력하게 되는 것은 영화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CG 기술 역시 매우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는데 전작에서는 스톱모션을 사용해서 터미네이터를 표현했다. 문제는 이 방법은 매우 비효율적이면서도 부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카메론 감독은 CG를 적극적으로 영화에 사용하면서 전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고, 이는 성공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액체 로봇인 T-1000이 감옥 쇠창살을 그대로 통과하는 장면은 당대에 큰 충격을 일으켰다.

 

이처럼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은 당대 인기를 끌었던 추격전 장르를 살리면서도 인간과 로봇의 우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그저 SF장르에만 머무른 것이 아닌 인간의 마음을 깊이 묘사하면서 이를 로봇과 연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많은 이들이 분명히 냉혹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터미네이터를 기억하며, 영화를 보는 순간 존 코너가 되어 다시 희열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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