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휘의 영화 칼럼] 우리들은 어리고 여렸다. '미성년'이라는 틀 안에서

영화 <미성년>,(2019)

 

 

* 본 칼럼은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0대의 기억 중 가장 황당하거나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10대였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었던 일 또한 무엇이 있었는가. 단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접점이라고는 없었던 주리와 윤아는 10대의 끝자락에서 평생 잊을 수 없을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주리의 아빠 대원은 윤아의 엄마 미희가 운영하던 식당으로 회사 회식을 나갔던 날 밤, 미희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불청객같이 찾아온 미희의 뱃속 새 생명은 이 두 가족에게 있어 잔인하면서도 서글픈 사건들이 일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아빠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던 주리는 불륜 상대의 딸인 윤아와 대면하게 되고 이 둘은 미희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서로에게 증오감을 느끼지만 뱃속 아이, 그러니까 그들의 동생을 위해 모든 일을 함께 헤쳐나가게 된다. 

 

영화 <미성년> 속에서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추운 겨울날 원치 않는 동생을 얻게 된 주리와 윤아의 때로는 화나고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따듯한 사건들을 그들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둘은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의지만으로 강인하고 단단한 외면만 보여주려 애쓰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고 여린 마음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아기를 보며 신기해하는 두 누나의 모습이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 중 하나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어떻게든 해결된다면 다시는 보지 말자고 약속한 사이였지만 처음 보는 새 생명 앞에서 조심스럽고도 호기심에 차 있던 눈빛들은 영락없는 어린 소녀들이 분명했다.

 


"내가 엄마를 좀 좋아하게 해주지 그랬어."

영화 <미성년> 中

 

자신의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윤아는 미희의 앞에 김치를 꺼내주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렇게 한마디를 던졌다. 윤아의 복잡하고 울컥한 심정이 한 마디 속에 모두 담겨있던 대사였다. 용서할 수 없어도 엄마였기에 애정에서 비롯된 원망이었을 것이다. 증오보다 원망에 가까운 말이었다. 

 

주리와 윤아는 오로지 아이를 위해 이 험난한 모험을 시작했다. 그 사이 윤아는 병원에서 주리를 보고 도망치던 대원을 쫓아갔고 주리는 미희의 병실을 찾아갔다. 아이만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상처받은 주리를 위해 대원을 쫓고 윤아 대신 산후조리가 필요한 미희에게 병문안을 하러 가며 어느새 서로를 위한 일들도 스스럼없이 해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황당하고 두려웠던 시작이었지만 두 소녀가 함께 떠난 여정의 막바지에는 서로가 물들어있었고 혐오로 시작한 어린 두 마음은 함께였기에 끝맺을 수 있었다.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주리와 윤아만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함께여서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조금 남다른 스케일(?)의 성장통을 겪은 두 소녀는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헤쳐나갈 수 있을 만큼 성장해나갔다. 지금 어쩌면 우울한 성장기를 겪고 있을 10대의 청소년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영화 <미성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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