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의 영화 칼럼 XIV] 기생충이 쏘아올린 묵직한 공

‘기생충’부터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까지,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발돋움 하다

 

 

작년 2월, 한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명망 있을뿐더러 그간 유독 동양 영화에는 박한 평가를 하던 시상식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컸다. 세계 각지의 유명인들은 앞다투어 “parasite” (영화 기생충의 영어 제목) 를 외치며 봉준호 감독의 사진을 올렸다.

 

한류, 해외에서 어떤 이미지인가? 가수 방탄소년단의 화려한 행보 덕분에 이전의 편견이 벗겨지는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 “한류” 는 미지의 존재이다. 우리, 특히 동아시아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신기한 무술과 종교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제작한 콘텐츠가 단편적인 이미지를 깨부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작년 말, 넷플릭스의 통계에 따르면 김칸비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스위트홈”이 8개국에서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하였다. 기생충으로 인해 한국 작품에 관심이 많이 쏠린 상태에서 넷플릭스라는 거대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독점 공개된 사실은 이 성공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스위트홈은 어느 날 갑자기 괴물로 변하는 이웃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고군분투의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그간 해외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국 드라마((ex. 역도왕 김복주, 김 비서가 왜 이럴까 등)) 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대체로 20대 여성층을 겨냥해 제작되었기에 한국 콘텐츠의 전반적인 매력 요소를 드러내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다양한 시청자층을 사로잡지도 못했다. 그러나 스위트홈의 경우에는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내용일뿐더러 캐릭터 또한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전 연령대가 주요 역할로 등장한다. 최적의 시기에 폭넓은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최고의 드라마가 공개된 것이다.

 

또한,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었지만, 코로나 사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도 공개 당일 넷플릭스 세계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하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승리호는 한국에서 오랜만에 시도한 상업 SF 영화다. 내용 면에서는 진부하다는 평가를 피해갈 수 없지만, 그간 한국 영화 시장에서 SF 영화가 주목받았던 적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고려하면 밑져도 본전인 수준이었기에 시도 자체가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드라마보다는 장르의 편향성이 덜하지만, 해외에서 많은 관객 수를 기록했던 영화들도 주로 경찰과 관련된 소재 (베테랑, 극한 직업 등)에 국한되었기에 우주 정거장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 승리호 역시 그리고, 다가오는 6월 18일 공개되는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도 큰 기대주다. 하이킥 시리즈 이후로 대중에게 인기를 끌지 못했던 시트콤의 부활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기로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에 발맞춰 해당 작품에는 상당수의 외국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가장 한국적인 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외국인’ 배우를 캐스팅해 한국인과 외국인 시청자 모두에게 친숙함과 신선함을 전달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이 또한 성공하게 된다면, 한국 미디어 산업은 고작 2년 사이에 많은 한계를 뛰어넘는 셈이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말하였다. 실제로 영어권 국가에 거주 중인 사람들은 자막에 익숙하지 않아 타 언어권 콘텐츠를 잘 소비하지 않고, 만약 시청을 하더라도 더빙 버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고작 1인치인 자막으로 인해 건너가지 못하던 세계를 향해 한국의 미디어 산업이 다리를 건설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는 영화와 드라마에 그치지만 이후에는 예능, 다큐 프로그램까지 수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등장하고 성공해야 한다.  한국의 수출 시장이 더욱 넓어질 것을 기대하며, 곧 공개될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의 성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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