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하의 독서 칼럼] 나에게 알을 깨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소설 '데미안'을 읽으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이다.”이 말은 1919년에 출간된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데미안은 내가 중학교가 되면서 여러 사람에게 꼭 읽을 것을 권장 받은 책이기도 하다. 뭔가 이제 중학생이고, 청소년인데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보다 더 뒤처질 것 같은 마음에 <데미안>이라는 책을 읽으려 했지만 사실 생각보다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고 후반부가 갈수록 이해가 어려워서 반쯤 읽은 채로 책장에 여러 달 꽂혀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방학에 하나의 도전과제로 데미안을 읽어보기로 했다.

 

 

읽는 것이 도전될 만큼 어려운 책도 아닌데 왜 이리 끙끙거리는지, 혹시 나만 이해하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서 끝에까지 읽긴 읽었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만큼 거창한 교훈을 모르겠다. 대충 이 책의 줄거리를 짧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부잣집 아들이다. 그런 집 안에서 자란 싱클레어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크로머를 만나게 된다.

 

왠지 자기보다 강해보이는 크로머를 동경하고 그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 과수원에서 친구와 일반 사과가 아닌 골드파르메네같이 엄청나게 값비싼 사과 한 자루를 훔쳤다는 거짓을 지어낸다. 크로머가 싱클레어의 말을 허풍을 떠는 거라고 의심하자 싱클레어는 하나님께 맹세까지 했다. 그런데 싱클레어는 크로머가 자신들의 무리에 넣어주길 바랐지만, 그러긴커녕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훔친 과수원집 주인에게 훔친 것을 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저 사소해 보이는 이 거짓말 하나가 성실하고 모범적이었던 싱클레어를 괴롭히게 된다. 그 결과, 부모님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는 일까지 하게 되고, 매일 지옥 같은 삶을 살 게 된다. 싱클레어를 괴롭히는 크로머를 데미안이 해결한다. 그러자 싱클레어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 예전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싱클레어를 도와준 데미안은 꽤 어른스러워 보이는 전학생이었고, 이 일 이후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후 세례를 받기 위해 교회에 간 싱클레어는 거기서 데미안을 다시 만나서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런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 싱클레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거짓말에 왜 맹세까지 하야만 했을까? 아니면 더 나아가서 거짓말로 협박당했을 때 농담이었는데 그걸 믿었냐며 넘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등의 몇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객관적으로 보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너무 간절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자기가 살고 있었던 세계와 너무나도 다른 세계를 접해야 했던 싱클레어에게는 이 사소한 거짓말이 그에게는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의 일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별일 아닌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내 삶 안에서 데미안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아니면 나는 '과연 누군가의 데미안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부당한 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친구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지금 이 책의 유명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라는 구절처럼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방학이 거의 끝나가는 즈음에 나는 데미안으로 이번 여름방학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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