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우의 사회 칼럼] 도망칠 용기가 필요한 순간들

 

 

 

시시각각 변화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흐르는 우리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흔히들 변화를 두려워한다. 한 번 배에 오르면 다시 물결에 몸을 맡기고 뛰어내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배가 낭떠러지를 향한다는 걸 직감을 통해 알게 되더라도 더욱 손에 힘을 주고 배의 난간을 움켜쥘 뿐이다. 이런 선택은 정의된 인간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일단 이 배에 탄 이상 마지막까지 애써봐야지!"

 

 

“나는 이 배와 함께 가라앉을 생각이 없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쪽이 더 용기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가?’ 라는 질문은 의미도 없다. 나머지 하나는 비겁하고 약삭빠른 인간이라 비난받기 딱 좋기 때문이다. 일관성 있는 삶과 변화하는 삶.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포기할 것인가.

 

위의 대사는 파라노이아형 인간과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을 의미한다. 파라노이아형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 집착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열을 올린다. 인생에서 우발적인 변화나 기회가 나타날 때, 기회와 변화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축적해온 과거의 정체성과 들어맞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반면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은 고정적인 정체성에 속박되지 않는다. 자신의 미의식이나 직감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한다.

 

‘의리!’가 최고인 세상은 지났다. 상황의 변화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밀려드는 파도에 침식될 뿐이나, 변화를 잘 읽는 사람은 밀려드는 파도 속에서도 서핑을 즐기리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다운 것’을 규정하기보다 변화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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