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사회비판 칼럼2] 같은 잘못 다른 대처

독일과 일본, 전범국가의 올바른 방향성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 28일 작은 총성으로 시작되었다. 작은 총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전 세계 모두의 신음소리,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를 담아냈고 인류를 잔인하게 만든 소리였다. 그 총성은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 피살 사건의 총성이었고 세계 제1차대전의 시작을 알렸다. 세르비아의 참모본부 정보부장이 밀파한 7명의 자객 가운데 G.프린치프의 흉탄에 맞아 피살되었다. 이에 오스트리아는 7월 23일, 세르비아 입장에서 절대 받아 들일 수 없는(사실 거의 타도하기 위해) 최후 통첩을 보냈고 5일 뒤인 7월 28일, 세르비아와 국교를 단절시키고 선전포고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세르비아에 대한 강경 방침을 대외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주저했던 오스트리아 지도자를 격려하고 전쟁을 개시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이 오늘날 밝혀졌다.

 

 

 

결국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전범국가로 영원히 낙인찍히게 되었다. 결국 11월 11일 연합국과 휴전조약을 맺으며 전 세계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첫 번째 세계대전이 전범국가인 독일의 패배로 끝맡침 되었다. 이후 독일은 엄청난 가난에 시달렸고 이 시기에 사탕 발린 말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약을 내세워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히틀러가 등장했고 선거를 통해 지도자로 당선되며 정복이라는 목표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결국 영국과 프랑스가 대독 선전포고를 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되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3국 조약을 근간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대립 구도가 잡히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주범이 독일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은 일본이다. 아시아 국가들을 끌어드렸기 때문이다. 1944년 11월 미국은 일본 본토 공습을 격화시켰고 7월 26일, 미⦁영⦁중은 ‘포츠담선언’에서 대일 처리방심을 명시하며 항복을 요구했지만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소련이 일본 항복을 위해 참전하면서 일본은 과거의 명예를 지고 항복을 하였다.

 

독일과 일본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하다. 이것이 글의 목적이다. 둘은 전범국가로서 전 세계에 피해를 끼치고 무법자로 모두를 정복하려 했다. 공통점이 이렇듯 너무나 명확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전쟁 이후 둘의 대처방안에 차이가 있다. 전범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긴 독일은 빌리 브란트 서독의 전 총리 역할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2차 세계대전 시기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헌화를 하던 도중 무릎을 꿇었다. 주변 수행원들이 그가 아픈 줄 알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행동은 충격을 주었다. 세계 언론들은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라고 평가했다. 이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진 이후 서독을 대표하는 총리의 과감한 행동은 그동안 전범국가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세계인들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대해 빌리브란트 전 총리는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이것은 빌리 브란트가 시작한 독일 통일 프로젝트에서 더 나아가 유럽전체의 평화화 통합을 향해 다가가는 ‘동방정책’의 상징적 출발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독일의 부끄러운 과오를 인정했다. 메르켈 총리 또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해 과거의 잘못을 가슴에 새기고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잘못을 인정했다.

 

반대로 일본은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한체 아직까지도 피해를 받은 국가들이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은 2015년 9월 18일, 새로운 안보법을 제정해 주면 국가나 우방이 공격받았을 때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여기고 전쟁에 개입하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 안보법으로 일본은 다른 국가에서 벌어진 전쟁에도 군대를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평화헌법을 만들어 70년 동안 지켜온 ‘먼저 공격받지 않으면 무력행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깨졌다. “일본을 되찾자!” 2015 일본 총선거 당시 여당인 자민당의 캐피프레이즈로 더 이상 패전국이 아니며 중국을 막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일본 우익의 본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교과서에 일본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중국의 상승세를 의식하며 군사력을 회복해 동아시아를 주름잡았던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일본이 자신만만할 수 있는 이유는 굳건한 뒷배 때문이다. 중국의 강대국 성장을 원하지 않는 미국과 유럽연합은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을 반기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뻔뻔한 전쟁에 대한 대처에 피해를 입은 개인, 국가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는 과거의 거울이자 현재에 좋은 본보기가 되는 책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언이 존재한다. 일본 정부는 이 명언을 상기시키고 전 세계를 전쟁의 늪에 빠지게 만든 장본인으로 이에 걸맞는 대처와 진실된 사과를 해야만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독일의 차이는 명확하다. 과거의 반성 속에 이웃국가와 공동의 가치를 모색하는 진정한 ‘정상 국가’가 전범국가인 일본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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