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승연의 시사·문화 칼럼] 우리는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팍스)’ 제도, 미국의 ‘지역 파트너십’ 제도, 독일의 ‘생활동반자관계’ 제도. 이처럼 해외 각국은 함께 살면서 서로 부양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을 생활동반자로 부르고,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하는 생활동반자법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제도권 안에 포용하고 있다. 반면 현행 대한민국 민법에서는 가족을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만으로 규정하기에 많은 동거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이를 보장하는 법 제도의 부재로 일명 ‘정상가족’ 외 가족에 대한 권리가 전혀 발현되지 못하고 불평등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도 생활동반자법을 만들자는 움직임은 있었으나 기존의 가족 제도를 위협한다는 우려의 목소리 탓에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동반자가 당장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도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해줄 수 없다. 환자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 대신 수술 후유증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도 없다. 동반자를 위해 장례 휴가를 쓸 수 없고, 자의적이고 민주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재산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못한다. 통신사 가족 할인, 항공사 마일리지 공유 등 당연히 누려야 할 혜택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함께 주거지를 알아보려고 할 때에도 ‘정상 가정’이 아니면 1인 가구로 취급 받기 때문에 주거 지원 정책에서 제외돼, 임대주택의 경우 15평 이하만 신청이 가능하며, 신혼 부부처럼 낮은 이자로 대출받을 수도 없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실직했을 때 새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한 명 월급으로 생활비를 충당한 경우에도 연말정산에서 세금 혜택은 받을 수 없다. 원래 연간 소득 100만원 이하인 가족이 있으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이 때문에 외벌이 부부가 1인 가구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해 ‘싱글세’라 불리며 비판 받기도 한다.

 

오로지 ‘정상가족’만을 취급하는 정책은 실제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생인 허모(62)씨와 김모(62)씨는 40년간 함께 살았다. 2013년 8월 골수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허씨는 얼마 살지 못할 예정이었다. 이들이 거주하던 아파트는 같이 돈을 모아 마련한 재산이었지만 허씨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김씨는 아파트 명의를 자신으로 이전하려 했으나 수년간 얼굴을 비치지 않던 허씨의 조카가 나타나 아파트 출입문 열쇠를 김씨 몰래 바꾸어버렸다. 김씨는 하루아침에 아파트에서 쫓겨났으며 사망보험금도 허씨 조카가 차지했다. 허씨와 김씨는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니었기에 허씨 재산의 상속인, 재산권 행사자는 김씨가 아닌 조카였고, 김씨는 신변을 비관하여 투신자살했다.

 

앞서 언급한 모든 내용은 결국 사회적 불평등의 발생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이라면 당연히 주어져야 할 공적 지원이나 사적 혜택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탈당하는 것은 불평등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삶의 방식이나 가족상을 일원화하여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국가가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지향하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논의와 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민건강보호법, 소득세법, 의료법 등 개인과 개인 간 공동생활을 둘러싼 법적 권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가족’이 다양한 측면의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되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출처 : 대학내일 "결혼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일어날 일", 한겨레 "법률로 동거가족 보호하는 '생활동반자법' 기대하시라", 한국일보 “4인 가족만 정상 가족인가요? 가족 구성권은 시민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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